이리니 습작/이리니의 사연 14

'스마트 폰' 때문에 '중년'을 느끼다.

아이뽕(응?), 엄니야(으응?), 빨리 베리(엉?)... 에... 또 뭐가 있더라... 얘네들이 일명 '똑똑한 전화기'라지...? 이리니가 얘네들에 대한 소문을 처음 접했을 때, 워낙에 똑똑한 애들이라니까 이런 상상을 했거든. '알람' 맞춰놓으면, 알아서 깨워주고, 다른 여자랑 있는데 여친 또는 아내에게서 전화오면, 지가 알아서 사뿐히 씹어주고, 스팸이 날아오면 알아서 즉각 반격, '이것들아! 내가 왜 니 오빠니? 내가 바로 니 애비다!' 역문자도 날려주고, 앞에서 솔로녀가 접근해오면, 주머니 속에서 은근슬쩍 '톡!톡! 얌마 기회얏!' 하며 찔러도 주고, 뭐 그럴줄 알았거등. 근데 그 정도로 똑똑한 넘은 아니더군. 단 하나 마음에 드는거라면, 아이뽕. 여자 치마를 들출 수 있다지...? '아이뽕 투'가 ..

키 작은 남자, 여자의 무시보다 더 서러울 때

출처 * 이 글은 이리니라는 키 작은 한 남자에게 국한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1. 천이 남아 도냐...? 이리니는 항상 다른 사람들보다 최소한 바지는 무조건 비싸게 주고 살 수 밖에 없는 처지다. 바가지를 쓴다는게 아니라, 바지를 산 후 항상 세탁소를 들러야 하기 때문이다. 왜 가냐고? 알잖아... 기장 줄이러. 그러니까 바지를 구입할 때마다 항상 '플러스 알파'의 요금을 더 지출하게 되는 셈이다. 한때는 이 일이 너무 서러워 재봉틀 기술을 배워볼까...하는 궁리도 했었다. 취업도 어려운 시기에 '창업'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이보다 더 서러운 일은 사실 옷가게에서 벌어진다.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 옷가게 여직원들은 이상스러울 정도로 태도가 싸늘하다. 여태껏 살면서 단 한번도 친절한 옷가..

조직적 소매치기, 생생히 목격하다.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아주 오래전 옛날부터 한국에는 17 : 1 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 대표적 인물이 '조선의 주먹'을 상징하는 김두한일 것이다. 헌데 이 전설적 인물이 실제로 라디오를 통해 인터뷰한 내용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일대 다수의 싸움에 대한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사실 모두 헛소문이에요. 저도 사실 2 :1 이상은 힘듭니다. 너무 수적으로 열세일 때는 좁은 골목길이나 주변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위험을 회피하곤 했습니다. 조선의 주먹, 김두한이 이 정도라면, 과연 일반인이 8 : 1 정도의 상황에 맞딱드리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해야만할까...? 바로 오늘이다. 그간 무수한 악플러들의 가슴저민 악플로 심장을 단련, 극강의 강심장으로 재탄생한 이리니가 8 ..

(릴레이 독서론) 나의 독서론

릴레이 규칙입니다. 1. 독서란 [ ]다. 의 네모를 채우고 간단한 의견을 써주세요. 2. 앞선 릴레이 주자의 이름들을 순서대로 써주시고 3. 릴레이 받을 두 명을 지정해 주세요. 4. 이 릴레이는 6월 20일까지만 지속됩니다. 자세한 사항은 inuit님의 글을 참조해 주세요. 독서란 [ 마지막 배 ] 다.  현재 시각 2009년 06월 20일 0시 46분. 야심한 시각, 컨디션의 난조로 힘겹고 피곤하다. 그래서 짧게 쓴다. 소시적이다. 생전 독서라곤 해본적 없던 한 아이가 책을 쥐게 되었다. 당시 그 책 속에서 무엇인가를 보았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보았다. 어린아이가 가진 마음의 크기라 해봐야 얼마나 클 것인가? 그 좁디 좁은 어린아이의 마음이 빠그작 부서져 버렸다. 그리고 ..

대마초 피우던 캐나다 친구의 고백

10년도 훨씬 전의 일이다. 캐나다에 잠시 적을 두고 생활할 때, 미국 살다 이민을 온 학교 친구 하나가 있었다. 매일 붙어다니는 절친한 친구라기보다 그냥 같은 수업 듣는 인연으로 오다가다 인사나 하고, 쉬는 시간에 간혹 모여 수다나 같이 떨던 그런 친구였다. 대충 듣자하니 아주 어린 나이에 부모로부터 독립, 꽤나 거친 생활을 거치며 흘러흘러 캐나다까지 이른 모양이었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지루한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을 때다. 기대하고 고대하던 금요일이 찾아왔다. 캐나다에서의 금요일은 사실상 우리나라의 토요일이다. 학교는 오전 수업만을 진행하고, 다음 토, 일은 그냥 공휴일인거다. 부랴부랴 가방을 챙겨들고 그 지긋지긋한 학교를 벗어나려 달려 나가고 있을 때, 누군가가 이리니의 이름을 외쳐 불렀다. ..

몸 불편한 버스보다 택시가 불쾌한 이유

지방에 있는 모 대학교 정문 앞. 글쓴이가 특히 사랑했던 장소다. 예전 주말에 버스를 타고 일을 보러 갈 때마다 꼭 거쳐야만 했던 장소. 대학교 앞이다 보니 좋은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첫째는 그곳이 버스 종점이었다는 점. 보통 순식간에 왔다, 눈 깜짝할 새에 가버리는 버스를 놓칠새라 눈에 잔뜩 힘을 주고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가 없었다. 오는 버스마다 최소 5분 이상을 머물렀으니까. 둘째? 한국땅에서 자판기 커피가 가장 싼 곳은 고기집 안에 있는 자판기고, 두번째로 싼 곳이 대학교 내 자판기다. 150원. 지금은 올랐으려나? 평소 커피를 물처럼 마시는지라 동전 2개를 넣고 원없이 커피를 즐길 수 있었다. 셋째? 탁 트인 공터가 눈 앞에 펼쳐져 있어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여 지쳐버린 심신을 쉬게 하기에..

선생님이 들려주신 '최고의 신부감 베스트 3'

중학교 3학년 시절. 영어 선생님 한 분이 계셨다. 늘 푸근한 웃음과 격조있는 여유를 지니신 분으로, 그 당시 청소년에서 한 남자로 한창 성장해 나아가던 소년 이리니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신 분이다. 이 분의 가장 큰 특징은 수업 중간 뜬금없이 시작되는 '너네들 말이야...'로 시작하는 선생님만의 독특한 철학 강의였다. 당시의 이리니는 비평준화 지역의 '고입연합고사'라는 입시지옥에 갇혀, 입으로는 쓴 물을 아래로는 피똥을 싸대며 연일 골골거리던 시절이라, 그 선생님 특유의 '너네들 말이야...'로 시작하는 선생님만의 독특한 삶의 철학 시간이 그토록 고맙고 즐거울 수가 없었다. 물론 연일 이어지는 주입식 교육의 강행군 도중에 만나는 잠깐의 여유, 쉬는 시간이라는 오아시스가 반가워서 이기도 했지만, 당시 이..

버스서 자리 양보하고 봉변 당한 사연

어느 한적한 오후였습니다. 버스를 탔는데, 다행히도 사람들이 많이 없더군요. 버스의 뒷바퀴 부분에 있는 볼록 튀어오른 좌석을 선호하는데, 마침 그 자리가 비어있어 냉큼 앉았습니다. 이 자리의 특징은 키가 크신 분은 많이 불편한 반면에, 키가 작은 사람에겐 안정감이 있어 조용히 한숨 자기가 참 편한 자리입니다. 다리를 볼록 튀어오른 자리에 잘 붙이면 참 안정적이거든요.^^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아서, 눈을 감고 쉬기보다는 주변을 휘휘 둘러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던 차에, 앞문을 통해 승차를 하시는 할머니 한 분을 보게 됐습니다. 얼굴에 주름이 많으신 걸로 봐선 할머니가 분명한데, 옷은 울긋불긋 화려했고, 얼굴에도 짙은 화장을 하셨더군요. 가까이 오셨을 때 자세히 보니, 할머니라고 하기에는 연세가 적고, 아주..

합석시, 일본녀와 한국녀의 극명한 대조

캐나다 시내에서 이리니와 죽이 잘 맞는 형과 간만에 술한잔을 하게 됐다. 이 형은 연대, 이대, 홍대 주변을 소시적부터 활개친 소위 말하는 '오렌지족' 출신으로, 그 연애 경력이 화려하기 그지 없었다. 그 당시의 이 형은 그 화려하던 시절을 뒤로 하고 한 여인에 정착해가던 시절이었다. 그에 반해 이 글을 쓰는 이리니는 이름 모를 시골 출신으로 오직 오기 하나와 경상도 사나이의 배짱 하나, 이 둘만 믿고 겁없이 설치던 시절이었다. 한적한 카페였다. 빠텐더 앞에 우리 둘이 앉고 있고, 나머지 테이블은 거의 전부 비어있는 상태. 이름모를 서양술 이것저것을 시켜 먹으며 조금씩 주기가 올라올 때 쯤, 옆의 형이 이리니의 옆구리를 찌르며 한쪽을 가리켜 보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한쪽 구석 창가 테이블에 동양인 여인..

선생님들, 제발 아이들 뺨 만은 때리지 마세요.

세월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살던 중에, 블로거들이 쏟아내는 스승에 대한 포스팅을 보고 '아, 오늘이 스승의 날이구나!' 했습니다. 글쓰는 사람의 학창 시절은 참으로 척박했습니다. 초등학교 때의 정원은 50명을 넘어 60명에 가까웠고, 비평준화 지역에서의 중학교 생활은 고3들 뺨칠 정도, 고등학교는 누구나 마찬가지였을듯 합니다. 참 맞기도 많이 맞았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제가 국민학교, 오늘날로 치면 초등학교 5학년 때였습니다. 그 당시의 누가 친구였는지, 어떤 걸 배웠는지, 뭘하고 놀았는지 사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가까이 전이니까요. 그 당시 담임 선생님은 여자분이셨습니다. 이 분만큼은 정말 또렷이 기억합니다. 다른 담임 선생님들은 어렴풋이 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