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니 습작/이리니의 사연

선생님들, 제발 아이들 뺨 만은 때리지 마세요.

이리니 2009. 5. 15. 18:23



 세월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살던 중에, 블로거들이 쏟아내는 스승에 대한 포스팅을 보고 '아, 오늘이 스승의 날이구나!' 했습니다.

 글쓰는 사람의 학창 시절은 참으로 척박했습니다. 초등학교 때의 정원은 50명을 넘어 60명에 가까웠고, 비평준화 지역에서의 중학교 생활은 고3들 뺨칠 정도, 고등학교는 누구나 마찬가지였을듯 합니다. 참 맞기도 많이 맞았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제가 국민학교, 오늘날로 치면 초등학교 5학년 때였습니다. 
그 당시의 누가 친구였는지, 어떤 걸 배웠는지, 뭘하고 놀았는지 사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가까이 전이니까요.

 그 당시 담임 선생님은 여자분이셨습니다. 이 분만큼은 정말 또렷이 기억합니다. 다른 담임 선생님들은 어렴풋이 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데, 유달리 이 분만큼은 아주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왜냐구요?

 제가 이 세상에 나온 이래로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저의 뺨을 때리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그 분의 표정마저도 또렷이 기억이 될 정도니 그 충격이 아마 굉장히 컸던 모양입니다. 

 무슨 장난을 쳤는지, 아니면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 시작은 이랬습니다. 

 어느 날 아침, 다른 날과 달리 굉장히 화가 나 계신듯 했습니다. 그 당시, 가정 주부셨으니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거나 출근을 하시면서 무슨 불쾌한 일이 있었을 겁니다. 이 분이 유쾌할 때는 그렇지 않다가, 특정 순간에 화와 짜증을 제법 자주 내셨습니다. 때때로 그 화풀이 대상은 우리, 학생들 일때도 있었습니다. 슬픈 일이지만, 장성한 지금은 선생님도 인간이시니 그럴 수 있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 제가 선생님의 심기를 건드리는 무슨 일인가를 했음에 분명합니다. 갑자기 그 선생님의 얼굴이 급작스레 변했습니다. 무섭다가 아니라 표독이라 해야 정확할 겁니다. 그 당시 절 노려 보셨던 그 위로 치켜져 올라간 두 눈을 아직도 기억할 정도니까요. 

 마치 순간이동을 하신 듯, 순식간에 제 앞으로 쇄도하신 선생님은 가차없이 저의 뺨을 후려 치셨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몰랐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이 선생님이 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쥐며 이러시더군요. 

대! 대! 이노무 자식, 대! 대란 말이야!
 
 보통 남자 선생님들께 맞으면 퍽! 퍽! 소리가 납니다. 근데 여자 선생님께 뺨을 맞으니 쫘~악! 쫘~악 소리가 나더군요. 지금까지도 그 선생님의 혼신의 힘을 담은듯한 그 날선 손을 기억합니다. 정말 자신의 모든 짜증과 분노를 다 담으시는듯 했습니다. 정신없이 머리가 이리저리 휘청인 끝에 그 일이 끝이 났습니다. 얼굴은 마치 누가 불이라도 지핀듯 화끈거렸습니다. 후끈~ 후끈~ 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참 서러웠던 걸로 기억합니다. 왼쪽 뺨, 오른쪽 뺨 할것 없이 온 얼굴이 시뻘게진채로 서러운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혹 소리라도 내서 울면, 또 때릴까봐 속으로 삼키는 꺼억꺼억 울음이었습니다. 



 장성한 후까지 이 일이 잊혀지지 않는 것이 이상해서 여러 모로 살피며,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나를 살펴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제가 내린 결론은 

자존감의 손상과 상처

였습니다. 

 초등학교, 남중, 남고를 거치면서 분명히 다른 선생님들께도 체벌을 받았습니다. 아주 심하게 받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근데 이상하게도 저 사건만이 또렷이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왜일까를 궁리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체벌 부위가

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일평생 여자 선생님들을 무던히도 무서워 했습니다. 항상 학년이 바뀌거나 진학을 할 때마다 여자 선생님이 담임이 아니시길 빌고 또 빌었습니다. 중학교 때 세 분의 여자 선생님들이 계셨는데,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가지고 있었던 편견은 '여자 선생님들은 짜증을 잘 낸다. 화를 잘 낸다. 그래서 뺨을 때린다'였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니까요. 한번의 안 좋은 기억이 어린아이의 마음에 저런 편견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저 역시도 생계 유지를 위해 몇 년간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습니다. 학창시절, 그렇게 체벌을 받고서도 저는 때때로 아이들의 체벌이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도 예전 학창시절, 저로 하여금 공부를 시키시겠다며 매를 드신 선생님들이 고마울 정도니까요. 그래서 저 역시도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아이들 체벌을 했었습니다. 대표적인게 손바닥 때리기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절대로 아이들 뺨을 때린 적은 없습니다. 조는 녀석들 잠에서 깨라고 머리를 두드린 적은 있지만, 단 한번도 뺨을 때리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저 자신의 화나 짜증을 아이들에게 풀지 않으려 했습니다. 살다보니 아이들 가르치는 것 이외에도 스트레스 받고, 짜증스러운 일이 생기기 마련이더군요. 그래도 어떻하든지 그 화를 풀고 수업을 들어가려 노력했습니다. 

 학교건 학원이건 어디건 아이들을 가르치시는 분들께 꼭 이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절대, 아이들 뺨은 때리지 마세요. 평생의 씻기지 않는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절대, 개인적 감정을 아이들에게 풀지 마세요. 아이들, 그거 영락없이 알아 봅니다. 

 아이들 가르치시느라 수고들이 많으신데, 그것도 스승의 날, 이런 말씀 드려 송구합니다. 꾸벅.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이러한 사실을 이미 잘 알고 계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그냥 한번 상기 시켜드리기 위해 적은 글이다...라고 너그럽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덧붙입니다>

동무 님이 올려주신 아름다운 사연이 있어 이 포스팅에 추가합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아름다운 사연입니다. ^^

저 역시 평생 잊을 수 없는 체벌이 있습니다. 제가 맞은 것이 아니라 저희 반 다른 아이가 맞았는데, 정말 평생 잊을 수가 없어요.

저희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셨는데, 수업시간에 단 한 번 얼굴 찌뿌리는 일 없이 늘 학생들과 얘기하던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렇기에 때로는 선생님의 그런 성품을 악용하던 학생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한 번은 선생님께서 어떤 숙제를 내주셨는데 역시나 그리 어려운 숙제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 선생님은 생전 때리지 않는 선생님이니 안해간들 어떠리'하고 온 학생들이 몇 명 있었습니다. 늘 웃으시던 선생님의 낯빛이 잠시 변하고는 숙제를 해오지 않은 학생들을 앞으로 불러내셨고, '몽둥이'를 드셨습니다. 그리고는 손바닥을 펴라고 하시고는 정확히 세 대를 때리셨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가, '퍽퍽퍽' 이나 '짝짝짝'이 아니라, '툭 툭 툭'...

말 그대로 그냥 손바닥에 그 몽둥이를 갖다 대시는 거였고, 당연히 늘 몽둥이로 얻어맞던 우리들은 순간 어찌 할 바를 몰랐지요. .특히 그 맞았던 학생들 중 한 명의 표정은 웃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시하는 것도 아닌 그야 말로 '이게 뭐지?'하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렇게 딱 세 대씩을 때로 학생들을 다시 자리에 앉히신 선생님의 말씀을 정확히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대강 이런 말씀이셨습니다.

"체벌은 아픔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남들 앞에서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는 것만으로 충분히 수치스러운 일이다. 오늘 맞은 학생들은 아픔을 기억하지 말고 내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를 꼭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오늘 친구들 앞에서 너희들을 수치스럽게 한 점에 대해서는 선생님이 미안하다. 하지만 너희들이 뭔가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최후의 방법이니 이해하고, 앞으로는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그 때는 아마 맞은 아이들은 "아싸, 하나도 안아프다~!" 했을 것이고, 그걸 본 아이들은 "뭐야, 저렇게 때릴 거면 뭐하러 불러..."라고 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머리가 제법 커지고 생각해보면 그 선생님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체벌"을 하신 분이셨습니다. 제대로 잘 커준 학생들이라면 아마 그 체벌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어찌 보면 별 것도 아닌 체벌을 하시면서 그렇게 안타까워하셨던 선생님... 그 선생님의 그 눈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네요. 멋모르던 그 때, '전교조는 무조건 나쁘다'는 뭣같은 선생들때문에 '그렇게 좋은 분이 왜 전교조같은 걸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 좋은 분이기에 그 때 전교조를 하셨구나'하는 생각이 드네요.

결국 해직당하셨고, 저희 반 마지막 수업 시간에 팝송을 가르쳐주시면서 끝내 눈물을 참지 못하셨던 그 선생님... 잊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선생님은 저희들의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받지 못하시고 눈물을 감추시느라 황급히 교실을 빠져나가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저희 반 수업이 그 분께서 우리 학교에서 한 마지막 수업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오래 되었고 담임도 한 번 안하신 분인데도 잊을 수 없는 그 이름... 박승덕 선생님... 나중에 꼭 복직이 되셔서 많은 학생들이 선생님의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면 하고 뒤늦게 바래봅니다. 선생님은 초중고등학교 12년 학교를 다니면서 알았던 수많은 선생님들 중에 아마 유일하게 '은사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일 것같습니다. 어디에 계시건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선생님의 가르침이 최소한 한 명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 왔음을 잊지 말아주세요.

오는 월요일에는 선생님이 어디 계신지 한 번 수소문 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