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속의 팁

아이들이 책을 안 본다구요? 어른들은요?

이리니 2009. 5. 20. 14:28


 예전에 개인적으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던 적이 있습니다. 공식적인 기관에서 가르치면서도 인연이 있는 몇몇 기초가 너무 약한 아이들을 보살펴야 했거든요. 이 때, 각 학생들의 가정을 방문할 때마다 심심찮게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선생님, 우리 아이는 통 책을 보지 않아요. 어쩌면 좋죠?

 아주 심각하게 인상을 쓰시면서, 나름 '선생' 소리를 듣는 이 사람에게 상담 아닌 상담을 요청해 오는 경우입니다. 현재 전 대한민국 전체가 휘감겨 있는 영어 열풍, 그때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에 더해 '논술'이라는 만만찮은 녀석이 많은 학생들을 괴롭히고 있는 시점이었으니까요. 

 이 소리를 듣자마자, 이 사람은 습관적으로 집 안을 둘러 봅니다. 그리곤 속으로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런 가정의 가장 큰 공통점이 하나가 있는데, 뭔지 아시겠습니까? 아시는 분들은 아실겁니다. 예, 맞습니다.

집 안에 책이 없습니다. 있어도 부모가 아이들 보라고 사다준 XX 전집류가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성인인 부모들이 보는 책들은 찾아 보기가 힘듭니다. 한마디로, 이런 가정의 특징은 성인인 부모가 책을 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여가 시간은 TV 앞에서 보냅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는 교육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책을 잔뜩 안겨주곤 읽으라고 하는 겁니다. 아이들이 읽을까요? 읽지 않습니다. 이 아이들 역시 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상당수의 시간을 TV 시청, 컴퓨터 게임으로 보냅니다.


 문제가 뭐냐구요? 예를 하나만 들겠습니다. 영어 독해를 합니다. 학생과 같이 합니다. 제법 긴 영어 지문을 모두 한국어로 해석했습니다. 이제 그 해석해 낸 글의 이해를 바탕으로 아래 나열된 문제들을 풀어야 합니다. 이게 현재 우리나라 중고등 영어 교육의 핵심이죠. 정말 놀라운 일이 여기서 벌어집니다. 한국어로 모두 해석된 글을 읽고서도 해답을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제법 자주 벌어집니다. 중, 고등학생 모두 마찬가지더군요. 이 시점은 영어 선생에게 있어 상당 부분, 절망을 안겨 줍니다. 한국어로 해석된 지문을 읽고, 듣고,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아이에게 외국의 언어인 영어를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런 아이들은 십중팔구, 국어, 논술에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한마디로 글을 읽고, 그 글의 내용과 주제, 핵심을 잡아내는것 자체에 어려움을 겪는 겁니다. 심지어 아주 어릴때부터 책을 접하지 않은 아이의 경우,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글을 읽다 글의 앞 부분을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글의 흐름 자체를 타지 못하는 겁니다. 이럴 경우, 어떻게 될까요? 



 성적은 두말 할 것도 없고, 평생 글, 책, 지식, 지성과는 멀어집니다. 글을 읽으려 하지 않는 것은 물론 타인의 말을 듣거나 글을 읽고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자주 일어납니다.  

 이 일이 아이들의 장래에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혹 아십니까?


 성인인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블로그를 하는 이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사실 중의 하나는, '장문'의 글은 자제해야 한다는 겁니다. 왜? 사람들이 읽으려 하지 않으니까요. 또 혹자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요즘 같은 정보화 시대에, 바빠 죽겠는데 왜 그 긴 글의 장문을 내가 읽어야하지? 짧은 뉴스, 간단한 정보, 요약된 화제들만을 읽는 것도 벅찬데 말이야.

 한편으론 맞는 말입니다. 글쓰는 저 역시 그러한 시대에 살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식이라면 아이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80자 정도의 짧디 짧은 '문자'로 소통하는 아이들입니다. 외국은 이 짧은 문자를 이용하는 SNS(Social Network Service)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많아 보입니다. 책을 읽기보다 친구들과의 짧은 채팅을 선호합니다. 게임에 열중하며, 친구들과의 단문 채팅을 즐거워합니다.








 어떤 학자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요즘 대세를 이루는 단문 문자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장문의 글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단문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장문의 글을 읽다 계속적으로 글의 앞 부분을 잊어가기  때문에, 글 전체의 주제와 요지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저는 자녀를 둔 학부형들께 이런 질문을 하나 던지고 이 긴 글을 마치려 합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아들들, 딸들에게 '책 좀 읽어!'라 말씀하실 자격이 되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