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니 습작/이리니의 사연

합석시, 일본녀와 한국녀의 극명한 대조

이리니 2009. 5. 21. 14:39



 캐나다 시내에서 이리니와 죽이 잘 맞는 형과 간만에 술한잔을 하게 됐다. 이 형은 연대, 이대, 홍대 주변을 소시적부터 활개친 소위 말하는 '오렌지족' 출신으로, 그 연애 경력이 화려하기 그지 없었다. 그 당시의 이 형은 그 화려하던 시절을 뒤로 하고 한 여인에 정착해가던 시절이었다. 그에 반해 이 글을 쓰는 이리니는 이름 모를 시골 출신으로 오직 오기 하나와 경상도 사나이의 배짱 하나, 이 둘만 믿고 겁없이 설치던 시절이었다. 

 한적한 카페였다. 빠텐더 앞에 우리 둘이 앉고 있고, 나머지 테이블은 거의 전부 비어있는 상태. 이름모를 서양술 이것저것을 시켜 먹으며 조금씩 주기가 올라올 때 쯤, 옆의 형이 이리니의 옆구리를 찌르며 한쪽을 가리켜 보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한쪽 구석 창가 테이블에 동양인 여인 두명이 마주보고 앉아 무슨 칵테일을 마시고 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너, 저기가서 합석하자고 한번 해봐. 우리 둘이 마시는 것보다 낫지 않겠어?
 평상시 없던 경험을 있는 것처럼, 없었던 수 많은 여친들을 있는 걸로 사기치고 다녔던 이리니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왜? 그전에 한번도 부킹이란걸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어쩌랴? 사나이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 하지만 그냥 갈 순 없었다. 

그럼, 내기 해. 내가 성사시키면, 나머지는 모두 형이 알아서 한다고. 물론 계산까지 포함해서지. 사나이의 존심을 건 내기! 어때?

'나머지는 모두 형이 알아서...'라는 단서를 붙인 이유는 그 뒤에 뭘 해야할지 당시의 이리니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이다. 내기라는 유치한 말을 한것 역시 뭔가를 감추고자 하는 치기였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이 형은 내가 완전 아무 경험없는 쑥맥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빙그레 웃는 얼굴로 '내기 성립'을 알려 왔다. 겉으로 표시나지 않게 크게 쉼호흡을 한 후, 천천히 발걸음을 떼며 그 두 여인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찬찬히 보니 일본 여자가 분명했다. 

 일본 여자인걸 알고 왜 안도의 숨을 내쉬었냐고? 경험상, 일본 여자들은 절대 초면인 사람에게 예의에 어긋난 언행을 하지 않았다. 한국 여인이었다면? 이리니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술값을 모두 계산하는 한이 있어도. 왜? 아래의 전개를 보면 알 수 있다.

실례합니다. 두 분이 뭔가 긴히 하실 말씀이 있는게 아니라면, 우리랑 자리를 같이 하는건 어때요?

 이 때다. 자세히 보이지 않았던 맞은편 여인네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이거 어디선가 많이 본 눈초리다. 아뿔싸, 한국 여인이다. 거짓말이 아니라 속에서 정말 욕을 하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자존심에 상처는 물론, 굴욕감마저 느낄 수 있는 상황인거다. 

음... 잠시 대화하는 것이라면 상관이 없어요. 앉으세요.

 다행히 일본 여인이 정중한 미소와 함께 먼저 승낙의 말을 꺼냈다. 옆의 일본 여인 때문인지, 한국 여인은 사나운 눈초리를 하고서도 별말 없이 자리를 지키며 대화를 함께 했다. 

 그 뒤의 전개는 평이했다. 당시의 우리는 뭔가 엉큼한 목적으로 여자들과의 합석을 한 것이 아니라, 남자 둘이 술을 마시다가 대화의 소재마저 떨어지던 차에, 조금 더 흥미로운 자리를 위해 여성들과 자리를 함께한 것일 뿐이었다. 전혀 모르는 이들과의 자리, 그것도 타국의 낯선 사람과의 갑작스런 교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이거 해본 사람만이 안다. 

 학교는 어디냐... 나라는 어디냐... 영어공부는 잘 되고 있냐... 지금은 어디 머무냐... 취미는 뭐냐... 등등. 이런저런 대화는 별 무리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단 한가지를 빼곤. 일본 여인 옆에 앉은 한국 여인은 '치!', '흥!'이라는 묘한 소리를 내며 끊임없이 조소를 흘리고 있었다. 말을 걸때마다 송곳으로 상대를 찌르는듯한 어투를 구사했다. 

고향이 어디에요?
그건 알아서 뭐하게요?
아, 뭐... 그럼 학교는요?
당신들이랑 같은 학교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대화 단절. 솔직히 예전의 몇 안되는 경험으로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말 그대로 대놓고 사람을 까고 있었다. 옆의 일본 여인은 한국어를 모르니 눈만 멀뚱멀뚱 거리고 있었다. 그나마 옆의 형이 일어가 가능했기에 재치있게 그 분위기를 무마해 가고 있었다. 

 조금 더 흥을 더하자는 간단한 이유로 만든 합석의 자리가 점점 불편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일본 여인이 화장실을 간다며 자리를 잠시 비우게 되고, 이 때 당시의 이리니는 상상도 못했던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일본 여인이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자마자 한국 여인의 입이 열렸다. 

흥! 당신네 부모들, 당신네들 이러고 다니는거 알아요?

 머리에 망치를 맞은 것 같았다. 당시의 이리니는 '외국서 호.모 대접 받은 사연'에서 썼듯이, 나름 1년간의 고통스런 공부를 마치고 이제 겨우 마음의 여유를 가져가던 시점, 그래서 간만에 형과 술자리를 함께 한 상황이었다.

무슨 말이에요?
힘들게 부모가 벌어다 준 돈으로 고작 이러고 다니는 거에요? 부끄럽지도 않아요?
 
 상황이 '가관'을 넘어 '황당'과 '당혹'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옆의 형을 힐끔 봤다. 그 엄청난 연애 경력 탓일까? 모든 것을 예상했다는듯한 초연한 표정으로 입가에 미소마저 머금고 있었다.

지금 무슨 생각으로 그런 소리를 하는 겁니까? 같이 술 한잔하며 얘기 좀 하자는게 그렇게 큰 죄가 됩니까? 그렇게 큰 죄에요?
항상 이러고 다녀요? 이 여자, 저 여자, 찝쩍찝쩍 거리며? 나 참, 기가 차서.. 흥! 칫! 흥! 칫!
지금 도대체 무슨....
 이리니가 말을 채 다하기도 전에 또,
공부하러 여기온 거 아니에요? 그런데 이게 뭐죠? 여자들 치근덕거리기나 하고... 돈이 그렇게 많아요? 공부는 안하고 밤마다 다니며 이 여자, 저 여자... 흥! 칫!
 그 뒤로도 대화가 이어졌지만 계속 이런 식이었다. 이리니는 '공부를 할만큼 했다. 그러다 잠시 짬이 나서 간만에 형과 술자리를 하고 있다. 좀 더 재밌는 자리를 만들자 싶어 합석을 했을 뿐이다.'고 말했고, 그 한국 여인은 우리 두 한국남자를 끊임없이 몰염치한 치한, 부모 돈 받아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매일 놀고 먹는 양아치 취급을 그만두려 하지 않았다.

일본 여인이 마침내 돌아왔다. 잠시 대화를 더 하던 중에, 시계를 보더니 이제 가야하는 시간이란다. 

내일 일이 있어서 지금 가야 해요. 오늘 대화 즐거웠어요. 그럼 이만.
 끝까지 예의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딱히 엄청난 미녀는 아니었지만, 그 예의를 잃지 않는 정중한 모습이 좋았다. 한국 여인은 여전히 괴상한 콧김을 쉬지 않았다. 자리를 같이 뜨는 순간조차 그 경멸의 눈초리를 우리 둘을 향해 끊임없이 날리고 있었다. 입가에는 여전히 조소를 머금은 채... 




 과거의 사연은 여기까지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 중, 특히 여자분들은 심히 불쾌하실지도 모르겠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단지 두 여인과의 사연일 뿐, 한국 여자들 전체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말이 나온 김에, 당시 나랑 동갑내기 친구사이였던 한 한국여인의 말을 옮겨 보겠다. 
 여자인 내가 봤을 때, 한국 여자들은 스타일도 제일 낫고, 참 이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남자들에게 인기가 없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인데, 시내를 걸을 때, 미소를 띄며 접근해 오는 캐나다 남자들이 있다. '어디서 왔느냐?'라고 물어서 '한국에서 왔다'라고 하면, 조금전의 미소는 씻은듯이 사라지고, 인사도 없이 홱돌아 가버린다. 왜 그럴까? 거리를 다니다보면, 외국 남자와 커플을 맺고 있는 다른 나라 여자들은 참 많이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 여자 같은 경우, 그런 케이스도 참 보기가 힘들다. 왜일까? 

 당시 이리니는 그 답을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말해주지 않았다. 불쾌해 할테니까...

 여성들의 악플이 버젓이 예상되는 이런 글을 쓴 이유는 이 말을 전하기 위해서다. 특히 남친 없는 솔로 여인들은 한번쯤 꼭 읽고 숙고해 주시길 당부 드린다. 

1. 열린 마음까지도 필요 없다. 초면인 상대를 만나면,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줘야 한다. 

2. 세상 그 어떤 남자도 자존심의 상처를 입어가면서까지 여인을 사귀고 싶어 하진 않는다. '날 진정으로 사랑하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아?'라는 생각, 혹시 가지고 계시지는 않는가?

3. 이 세상의 모든 남자를 일단 짐승, 치한, 엉큼한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치부한다면, 무슨 수로 교제가 가능하겠는가? 이럴 경우, 어쩔 수 없이 주변의 믿을만한 사람의 소개 이외에는 교제를 할 수 있는 방법 자체가 없는 것이다. 학생이거나 아직 많이 젊을 때는 미팅자리라도 있지만, 20대 후반만 넘어가도 이런 자리 가지기가 어렵다.

4. 요즘 남자들이 과거에 비해 많이 약해졌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에 비해 여자들은 과거에 비해 더 강해졌다. '솔로'의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거든, 남자의 가슴에 '비수'를 꼿는 행위를 그만두라.

5. '날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이 정도는 최소한 해줘야 하는거 아냐?'란 생각을 고수하고 싶은가? 그냥 솔로로 계속 살게 될지도 모른다.

6.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남녀관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관계'가 먼저다. 만약 남자가 오직 그 여자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있을 때만 다가가야 한다면, 이 세상살이가 얼마나 삭막해 지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