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니 습작/이리니의 사연

선생님이 들려주신 '최고의 신부감 베스트 3'

이리니 2009. 6. 8. 08:30



 중학교 3학년 시절. 영어 선생님 한 분이 계셨다. 늘 푸근한 웃음과 격조있는 여유를 지니신 분으로, 그 당시 청소년에서 한 남자로 한창 성장해 나아가던 소년 이리니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신 분이다. 이 분의 가장 큰 특징은 수업 중간 뜬금없이 시작되는 '너네들 말이야...'로 시작하는 선생님만의 독특한 철학 강의였다. 당시의 이리니는 비평준화 지역의 '고입연합고사'라는 입시지옥에 갇혀, 입으로는 쓴 물을 아래로는 피똥을 싸대며 연일 골골거리던 시절이라, 그 선생님 특유의 '너네들 말이야...'로 시작하는 선생님만의 독특한 삶의 철학 시간이 그토록 고맙고 즐거울 수가 없었다. 물론 연일 이어지는 주입식 교육의 강행군 도중에 만나는 잠깐의 여유, 쉬는 시간이라는 오아시스가 반가워서 이기도 했지만, 당시 이미 불혹을 훌쩍 넘기셨던 선생님의 직접 경험에서 우러나온 그분만의 철학은 너무나도 근사해 보였다. 

 연일이어지는 강행군에 체력이 약한 녀석들,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녀석들, 학업에 별 흥미가 없는 녀석들이 무더기로 '사요나라~'를 외치며 학교 담장을 넘어 꿈나라로 도피를 떠나고 있던 순간, 드디어 나왔다. 

너네들 말이야...
 순간 몇몇 학생들이 움찔! 하며 깨어나기 시작했다. 결정적 후속타가 이어졌다. 

여자가 말이야...

 후다닥!!! 
 마치 반장이 벌떡 일어나 '충성! 학생 전원 기상 완료! 충.성.!'이라 외치면 딱 알맞은 광경이 연출됐다. 남학교만 다니셨던 불우한 전우들께서는 이 광경을 심심찮게 목격하셨을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 선생님이 되실 분들은 참고하시면 좋겠다. 남중, 남고에서 학생들의 기분을 순식간에 전환하고, 꿈나라를 헤매는 길 잃은 어린 양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주문이 있으니... 그 이름도 위대한...

여자...
 지나치게 길을 잃은 대책없는 어린 양들도 소수 있을 수 있다. 여전히 자는거다. 이 때는 조금 말을 길게 늘이시면 되겠다.

여자가 옷을... 벗...
 믿어라. 바로 들려온다. '충성! 길 잃은 어린 양들, 전원 교실로 복귀 완료. 충.성.!' 
위대한 존재여... 그대들의 이름은 다름 아닌 '여자'로다...

 그 날은 사뭇 뭔가가 달랐다. 아마 처음으로 '여자'를 소재로 말씀을 꺼내셨던거다. 어쩌면 우리 동무들의 꿈나라 여행이 지나치게 많고 길었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이어지는 선생님의 중후한 목소리...

너네들 나중에 결혼할거지...?  여! 자! 랑!
 '여.자.랑'이라는 말에 들어가는 절묘한 악센트. 역시 내공의 고수다. 움찔움찔. 비록 중3이었지만, 당시 이리니를 포함한 이리니의 전우들은 어린 나이에도 이미 남자로서의 면모를 모두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너네들 어떤 여자랑 만나서 결혼할거야? 말해봐...
뻔하다.
예쁜 여자요...
솔직히 이 부분은 글쓴이에 의해 약간의 언어 순화를 거쳤다. 당시 터져나온 어휘는 '깔쌈한[각주:1]'이었다. 
 
크크크... 하수들... 오늘 이 선생님이 최고의 여자 베스트 쓰리를 전수해 주마...
 



최고의 신부감 3위   

 

 3위가 예쁜 여자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터져 나오자, 여기저기서 목숨을 건 전우들의 항의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선생님을 향한 '말도 안돼요...!'라는 경악할 소리마저 나왔다. 항상 이런 녀석들이 말썽이다. 이리니를 포함한 '눈치로, 날아오는 눈먼 회초리 피하기'의 몇몇 달인들은 이미 어깨를 잔뜩 웅그린채, 혹시나 있을지 모를 미연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다. 다행히 이미 그런 소리가 터져 나올걸 예상한듯한 선생님의 여유있는 목소리. 

그래서 너네들은 하수인거야... 잘 들어봐. 
너네들이 예쁜 여자랑 결혼을 했다 쳐. 그 여자가 계속 예쁘게 보일까....?
 또르르륵. 또르르륵. 눈알과 뇌가 동시에 돌아가는 소리. 회전이 빠른 녀석들은 이미 머리 속에 '싫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있었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곧 반 대다수 아이들이 이 '싫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있을 즈음,
너네들 생각이 대충 맞아. 싫증나고 질려버리는 것도 맞지만, 결혼해서 계속 얼굴 맞대고 살다보면 어느 순간 예쁘다는 느낌을 더 이상 느낄 수 없게 되지 않겠어...?  그 예쁘다는 느낌이 지속되는 최대의 시간...?
 또르르륵. 또르르륵. 굴려봤자 알 턱이 있나... 곧 이어 터져 나오는 선생님의 단언!!!
3 년 !!!
 끄덕끄덕. 다수의 반 아이들이 간단히 수긍해 버렸다. 무대포 주입식 교육에 철저히 길들여진 공부하는 기계들.
선생님이 3년!...이라고 하셨으니, 정답은 분명히 '3년'이어야만 했다. 아니면? 틀리니까... 성적 안 나오니까... 그럼 맞으니까... 대학 못 가니까... 인생 종치니까... 여자들한테, 에유 이 한심한 똥.떵.어.리 소리를 듣는다니까...

 이리니는 지금도 이쁜 여자들의 유효기간이 3년이라 철썩 같이 믿고 있다. --;



 최고의 신부감 2위   

 

 당시나 지금이나 이리니는 여전히 '아담 + 통통 + 젖살 + 보조개 + 큰 눈 + 풍만 삐삐 + 오동통 삐삐'의 귀여운 여성을 선호한다. 내심 귀여운 여자가 1위일 것이라 겐또[각주:2]를 치고 있던 이리니에게는 다소 충격. 하나 틀린거다. 점수를 까먹은거다.

 하지만 다수의 학생들은 또다시 급수긍. 

 우리나라 남자들의 상당수가 섹시하고 이쁜 여자보다 귀여운 여자를 더 선호하는다는 조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TV로 보는 서양의 '쭉쭉빵빵 + 글래머'녀들은 보기에는 좋아도 사실 직접 만나본 경험에 의하면 체구가 작고 깜찍한 이리니 같은 남자들에게는 상당히 위압적, 더 나아가 위협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녀들이 침대에 벌러덩 누워 '컴 온, 베이비'라며 손가락을 까딱거리면 좋을것 같지만, 왠지 체력에서, 힘에서 눌릴것 같은 그 묘한 두려움. 
 
I wanna EAT you..
 

후덜덜... --;

 곧 선생님의 질문이 이어졌다. 
왜 귀여운 여자가 2위일까? 너네들 중에 귀여운 여중생 좋아하는 녀석들 많잖아...?
여대생? 누구냐? 너, 이리 나와...!! ^^
 이리니는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분명히 '익숙해짐 + 싫증 + 시간'과 관련이 있을테니까...
이어 터져나오는 선생님의 정답.
10 년 !!! 
선생님, 왜 10년이에요? 귀여운 여자가 10년 밖에 안간다구요...?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녀석이 질문을 했다. 감히 선생님께 질문이라니... 당시는 가히 상상조차 힘든 일이었다.
주입식 교육에 질문이라니...? 가당찮은 일이었다. 

남자도 그렇지만 여자도 늙어. 늙은 여자가 귀엽다...? 가능할까...?
 사실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흔히 볼 수 있는 경우도 아니란 사실은 다 아실거다. 
귀여운 아줌마...? 귀여운 할매...? --;

 모든 학생들 급수긍. 머리 속에 입력.

1. 다음 중 '귀여운 여자'의 유통 기한으로 가장 올바른 것은?

①    이 년         ②      저 년         ③         요 년               ④         고 년            ⑤       십 년

* 그냥 유머로 너그러이 받아 주시길... 이리니는 남자, 여성을 사랑합니다. ^^


 
 베스트 신부감 - 대망의 1위  

 

 잔잔히 깔리는 침묵의 어둠. 꼴깍꼴깍 넘어가는 침넘어 가는 소리만 들려오는데... 사락사락 여자의 옷.. 벗... --;

 드디어 기다리던 순간. 가히 압도적인 몰입으로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는 무심, 무아, 망아의 상태. 모든 아이들이 선생님의 두툼한 입술만 쳐다 보고 있었다. 드디어 열리기 시작했다. 
에...
 에이....!!! 터져나오는 아이들의 거친 저항의 함성... 이 샘, 역시 고수였다. 50명의 아이들을 당신의 입 안에 넣고 씹었다 뱉었다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었다. 훗날 선생이라는 직업을 잠시 가졌던 시절, 이 선생님의 내공을 여러가지 흉내내, 아이들에게 제법 사랑을 받기도 했었다.

반장? 수업 시간 끝나지 않았나...?
 소위 말하는 끊기 신공. 절묘한 타이밍에 끊어, 사람들의 기대치를 최대로, 애간장을 녹여내는 필살기. 주로 드라마, 소설 작가들이 많이 사용하는 신공 절학이다. 

 아이들의 몰입도와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무렵. 드디어 그 정답이 만천하... 는 아니고 교실에 울려 퍼졌다.
우아한 여자 !
 두둥! 바로 이 때다. 이리니의 뒤통수를 뭔가가 때린 것이... 우아.. 우아.. 우아.. 우아.. 우아.. 우아..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어휘. 단 한번도 이성과 연관시켜 본 적이 없는 표현. 사실상 현실의 삶 속에서조차 사용하지 않는 표현. 심지어 단 한번도 실제 본 적이 없는 우아한 인간, 우아한 여성...

 왜...? 뒤어어진 선생님의 말씀이 가히 걸작이었다. 

 우아함은 세월과 함께 그 정도의 깊이와 농도가 짙어지는 특징이 있다. 세월과 함께 성장, 성숙하는 것이다. 그러니 너네들이 이런 여자와 결혼을 해서 한평생을 같이 산다면,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싫증이 나기는 커녕 그 시간, 세월과 함께 점점 우아해져 가는 그 여인의 매력에서 빠져 나오지 못할 것이다. 점점 그 매력을 더해갈 것이며, 점점 더 사랑스러워질 것이다. 이것이 우아한 여인이 최고의 신부감 1위인 이유이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이리니의 이상형은 완전 결정 되었다. 뇌리와 온 몸에 완전 각인 되었다. 


 주의 사항  

 

이리니의 이 어슬픈 글을 읽고, '나도!'란 생각을 내신 남정네 여러분들께 한가지 주의사항을 알려드립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나도 우아한 여자를 만나 일평생 옴팡지게, 때깔나게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하시는 순간,
 여러분들은 곧바로 탈영이 불가능한 '솔로 특공 여단 소속, 홀애비 대대, 무자식 중대, 불효자 소대'의 소대원으로 말뚝을 박게 되실지 모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아한 여자'는 세계적 희귀종으로 WEWPO(World Elegant Women Protection Organization), 세계 우아 여성 보호 기관이 지정한 '전세계 특 보호종'으로써 여러분들의 주변에서 발견될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합니다. 

WEWPO의 총재인 스토커 박사는 
우아한 여성을 만나 결혼할 확률은 자기집 앞마당을 열라 삽질하다 기름이 터져나오는 유전을 발견할 확률보다 더 희박하다...
라 밝힌 적이 있습니다. 



 마무리  

 

돈, 명예, 명성, 지위, 근육을 목표로 나아가는 남자들은 허다히 많다해도,
품위, 격조, 품격을 목표로 나아가는 남자를 현실에서 만난다는 것. 사실 쉽지 않다.

미모, 몸매, 돈, 명성, 섹시를 목표로 나아가는 여자들은 허다히 많다해도,
품위, 품격, 우아함을 목표로 나아가는 여자를 현실에서 만난다는 것. 사실 쉽지 않다. 

대망의 1위, 우아한 여인을 만나 장가를 들겠다는 대망을 품고 살아오길 어언 삽십 땡년...
미래의 아내, 그 우아한 여인에 걸맞는 내면적 성숙과 품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온지 어언 20년...
남은 것이라곤 서서히 늘어나는 흰머리와 눈 밑의 주름,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구라 밖에 없게 되었다.


짝없이 홀로 날아다니는 외기러기들이여...
그대들 머리 속에 있는 그것은 그냥 '이상'일 뿐임을 하루 빨리 깨달아
주변에 있는 적당한 이를 만나 짝을 지을지니...
그곳에 바로 사랑, 진정한 행복이 있을지도 모른다네... ^^


저요? 음... 저는 계속 찾을 생각입니다. 우아한 여성을요... 
이상, 짝이 없어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이리니였습니다. ^^;;

재미가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했는데, 어땠나요?  그럭저럭이라도 괜찮았다면 한번 눌러주세요.
저에게 글을 써나갈 힘을 준답니다. ^^





  1. 이쁜, 예쁜, 몸매좋은, 섹시한, 매력적인 등의 의미를 모두 광범위하게 커버하는 전문 용어. [본문으로]
  2. 일어. 한국어로는 찍기.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