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니 습작/이리니의 사연

대마초 피우던 캐나다 친구의 고백

이리니 2009. 6. 15. 19:07

 10년도 훨씬 전의 일이다. 캐나다에 잠시 적을 두고 생활할 때, 미국 살다 이민을 온 학교 친구 하나가 있었다. 매일 붙어다니는 절친한 친구라기보다 그냥 같은 수업 듣는 인연으로 오다가다 인사나 하고, 쉬는 시간에 간혹 모여 수다나 같이 떨던 그런 친구였다. 대충 듣자하니 아주 어린 나이에 부모로부터 독립, 꽤나 거친 생활을 거치며 흘러흘러 캐나다까지 이른 모양이었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지루한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을 때다. 기대하고 고대하던 금요일이 찾아왔다. 캐나다에서의 금요일은 사실상 우리나라의 토요일이다. 학교는 오전 수업만을 진행하고, 다음 토, 일은 그냥 공휴일인거다. 부랴부랴 가방을 챙겨들고 그 지긋지긋한 학교를 벗어나려 달려 나가고 있을 때, 누군가가 이리니의 이름을 외쳐 불렀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바로 그 녀석이었다. 
야, 너 우리 파티할건데, 오지 않을래...? 그냥 너 먹고 마실 것만 간단히 챙겨오면 돼. 어때?
 캐나다에 간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을 때지만, 단 한번도 서양인들이 한다는 파티에 가본 적이 없었다. 딱히 휴일에 특별한 계획도 없었던터라, 별 생각없이 OK 싸인을 줘버렸다. 
꽤 재밌을거야...
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져가는 녀석의 미소가 마치 짓궃은 장난을 준비해둔 악동 같아 보였다. 


 예상 외의 파티  

 

 간혹 헐리웃 영화에서나 나오는 젊은이들의 거창한 광란의 파티를 기대한건 아니지만, 정작 실제로 보게된 파티장의 모습은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사실 파티장이랄 것도 없었다. 그냥 그 녀석과 룸메이트가 같이 생활하는 아파트였으니까. 가져간 맥주캔 몇 개를 그 녀석에게 건네고, 익히 잘 아는 학교 친구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생전 그런 자리에 모습을 보이지 않던 이리니가 나타나니 놀랍다는 모습을 보이는 녀석들도 있었다. 

 쭉 둘러보니 서양인들은 단 둘. 나머지는 모두 아시아쪽에서 공부를 하러온 이리니 같은 친구들 뿐이었다. 다 해봤자 고작 열 명정도? 파티라기보다 맥주나 홀짝이며 낄낄거리는 것으로 그간 쌓인 스트레스나 풀어보자는 자리 같았다. 

 정말 별게 없었다. 그냥 카페트 바닥 위에 삼삼오오 같이 앉아 맥주를 마시고, 별 의미없는 우스개 소리를 날리며 히히덕 거리는게 전부였다. 그래도 너나없이 젊어서였을까...? 제법 유쾌했다. 아무 부담없는 금요일 저녁에 간혹이라도 이렇게 모여 낄낄거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홀짝이기만 했던 맥주도 술이던가... 취기가 조금씩 오르며 다들 얼굴이 붉그스레 해질 무렵, 그 녀석이 예의 그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슬그머니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바닥에 다시 털썩 주저 앉은 녀석이 손에 든 괴상한 풀 쪼가리를 자랑스레 내보이며 이런다.
짜잔... 오늘의 하이라이트 시간이야!!!
 
 요즘 대세는 리얼, 하지만...  

 

 당시 있던 열명 남짓한 인원들 중에 유일하게 이리니만 그 경험을 하지 않기로 선택했다. 왜? 이리니가 삶을 살면서 가장 절절히 깨달은 바가 바로 '중독의 무서움'이다.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흡연이 어느새 습관으로, 습관에서 다시 중독으로 발전하는 양상을 온몸으로 체험해 왔다. 이거 정말 무섭다. 금연을 여러차례 시도하며, 이 중독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히도 어려운지를 실감 또 실감했다. 그 이후로 중독의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애초부터 시작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 몸에 밴 습관이 되었다. 

 오직 홀로 제정신인 상태로 당시 그 대마초라는 괴상한 식물로 인해 벌어지는 다소 어이없는 광경들을 생생하게 목격했고 기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부분은 글로 상세히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유? 사람이 호기심의 동물이라는 것. 그냥 이렇게 말씀 드리면 왠만하면 이해가 되시리라 믿는다. 그냥 에피소드 하나만 간략히 언급하고 넘어가자. 

 위에서 '어이없는 광경'이라는 표현을 썼다. 왜냐하면 당시 유일하게 제정신이었던 이리니에게 그 녀석들 모두가 갑작스레 바보같은 어린아이로 변한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간혹 영화에서나 나오는 눈을 허옇게 까뒤집으며 의식을 잃어가는 광경은 연출되지 않았다. 다만, 그냥, 모두가 낄낄낄거리는 바보가 되어 버렸다. 

 한 녀석이 그 미국인 친구에게 이런 말을 내뱉았다. 
낄낄낄... 너 영어 못 해. 낄낄낄...
 그러자 나머지 녀석들 모두가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유머를 들었다는듯이 배를 움켜잡고 폭소를 터뜨리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문제는? 비영어권 태생이라 영어라곤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녀석이 미국 태생의 영어 원어민에게 '너 영어 못해!'라 단정지어 얘기했고, 그걸 들은 다른 녀석들은 '맞아! 맞아!'를 외치며 미친듯이 바닥을 굴러다니며 낄낄 거렸다는거다. 이게 웃기니...? 그게 유머야...? 이 광경을 보면서 비록 경험은 못했지만, 단 한가지는 알 수 있었다. 이 희대의 식물은 최소한 사람을 지나칠 정도로 웃음이 많아지게 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나중에 다른 친구들에게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나도 잘 모르겠지만, 이상할 정도로 즐거웠어. 그냥 막 웃음이 나왔어. 모든 것이 다 유쾌했어...
 여기까지만 들으면, 이 식물은 정말로 하늘이 내린 축복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냥 막 사람을 즐겁게 한다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하지만 바로 이 부분이 그 친구의 고백에 의하면 사실 가장 무섭고, 가장 큰 함정이 되는 부분이다. 


 중독  

 

 그 날 이후로 몇번 더 파티 아닌 파티에로의 초대가 있었지만 응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괴상한 광경과 그 식물이 탈 때 나는 역겨운 연기가 너무나 싫어서였다. 몇번이고 거절하는 이리니가 얄미웠던 것일까? 이 녀석이 한번은 설득을 하려 들었다. 그래서 솔직히 답했다. 
난 중독이 싫어. 그 중독이란거 자체가 무서워. 그래서 가지 않을테야.
 그랬더니 이 녀석이 설득을 하겠답시고 이런 소리를 내뱉았다. 
마리화나는 화학적 중독이 없어. 담배랑은 달라. 그러니 중독될 걱정은 안해도 돼. 가자, 응?
 솔깃할뻔 했다. 하지만 멀쩡하던 사람을 일순간에 낄낄이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그 식물의 힘을 목격한 이상, 거길 다시 가긴 지나치게 찜찜했다. 딱 잘라 거절해 버렸다. 아마 이 이후부터 였을거다. 원래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녀석이랑 더욱 거리가 생겨버린 것이. 그 녀석의 룸메이트도 같은 학교 학생이었는데, 마찬가지로 거리가 생겨버렸다.


 친구의 고백  

 

 그 날 이후 꽤 시간이 지났다. 피자로 대충 점심을 떼우고, 학교 내에 있는 휴식 공간에 앉아 유일하게 버리지 못하고 있는 중독, 그 흡연을 하고 있을 때다. 마침 그 녀석도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참이었던 모양이다. 일이 되려고 그랬는지 주변에 다른 친구들은 보이지 않고, 단 둘만 있게 되었다. 그 녀석의 입에서 툭 던져진 갑작스런 멘트가 이 대화의 시작이었다.
 
이 : 이리니,  친 :  그 녀석
 
친 : 나도 너처럼 그랬어야 했어.
이 : 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친 : 나도 너처럼 애초에 시작을 말았어야 했다구... 휴우...
이 : 뭘 시작을 말아?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친 : (주변 눈치를 보며) 그거 말이야, 그거.
이 : 아~, 그거... 너 근데 예전에는 전혀 다른 소리했잖아. 화학적 중독이 아니라서 전혀 문제 없다며?
친 : (길게 한숨을 내쉬며) 근데 그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구...
이 : 왜? 무슨 문제 생긴거야...?

 이 이후로 녀석의 어려운 고백이 시작된다. 

친 : 나... 습관처럼 그걸 찾아.
이 : 너 원래 그렇잖아.
친 : 네가 생각하는 그 정도 수준이 아니야. 
이 : 파티 같은거하며 친구들이랑 어울릴 때, 좀 자주 찾는 그 정도가 아냐?
친 : 응.
이 : 얼마나 자주?
친 : 어떨때는 아주 자주. 하루에 몇 번씩일 때도 있어. 
이 : 너, 중독 됐구나?
친 : 중독 아니라니까 그러네. 담배랑은 다르다니까!
이 : 그게 중독이 아니면 뭐야? 굳이 말하자면 '정신적 중독'이잖아. 아냐?
친 : 쩝, 뭐 굳이 말하자면 정신적 중독이긴 하겠네...
이 : 심각해?
친 : 요즘 부쩍 '좀 심각한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어. 
이 : 얼마나?
친 : 잠 안오면 해.
이 : 그걸? 잠이 안와서...?
친 : 응. 그걸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잠이 좀 잘 오거든...
이 : 너 그럼 아침에 그 눈...
친 : 응.


( 이 사진처럼 된다는건 아니다. 그 만큼 붉어진다는걸 강조하기 위한 사진. )
 
 이 대마초 흡입을 하게되면 외관상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가 눈이 엄청나게 붉어지는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가히 시뻘겋다라고 불러야 할 정도. 눈에 있는 모든 미세한 혈관이 징그러울 정도로 붉어지며 두드러져 보였다. 당시 아파트에서 봤던 친구 녀석들의 눈은 마치 공포 영화에나 나오는 괴물의 눈을 연상케 할 정도로 괴이쩍게 붉었다. 

 이 녀석이 간혹 아침에 등교를 하면 눈이 지나치게 붉어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전날 밤에 이 녀석이 그걸 찾았다는 말이다. 

이 : 그 정도면 뭐...
친 : 또 있어.
이 : 또?
친 : 우울, 울적할 때.
이 : 그러면?
친 : 기분이 좋아지거든.
이 : 우울할 때 마다? 
친 : 좀 자주. 예전에는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자주 찾게 돼. 우울한건 싫으니까.  
이 : 또?
친 : 스트레스 받았을 때.
이 : 또?
친 : 골치 아픈 일 생겼을 때.
이 : 또?
친 : 고민 생겼을 때.
이 : 이제 다야?
친 : 아니... 두통 있을 때, 몸이 찌푸드드할 때,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그냥 심심할 때...
이 : 그냥? 그냥 막 그렇게 피워댄다고? 너 그러다 죽는거 아냐?
친 : 예전에는 안 이랬는데, 요즘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거 같아서 말야...
이 : 그러니까 네 말은 여하튼 네게 안 좋은 뭔가가 있거나 생길 때마다 습관적으로 그걸 찾는다? 
친 : 응.
이 : 다른 것도 많잖아. 예를들면 운동을 해서 스트레스를 푼다거나, 산책을 해서 기분 전환을 한다거나...
친 : 그게 제일 빠르고 쉽거든. 시간도, 노력도 필요없이 간단히 그냥 기분 좋아지니까. 사실 이게 제일 무서운거 같아. 손쉽고 빠르다는거. 다른건 힘드니까, 하기가 싫어. 그냥 이걸로 무조건 계속... 
이 : 너, 그게 사실상 전혀 어떠한 문제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거 몰라? 그냥 잠시 기분 좋게 만들어서 당면한 문제를 피하고, 잊고, 무시하고, 도망가기만 할 뿐이잖아?
친 : 그걸 알긴 하지만, 또 그런 상황이 생기면 자꾸 그걸 찾게 되더라구...
이 : 이야... 이거 정말 무서운거구나! 어떤 측면에서 보면 마약보다 더 무서울지도 모르겠는걸...? 내가 봤을 때, 너 완전 중독이야. 그것도 엄청 심각한 정신적 중독... 너 어쩔 생각이야? 이거 끊을 수 있는 방법 없어?
친 : 그래서 네가 부럽다고 했잖아. 처음부터 시작을 말았어야 했어. 너처럼 그랬어야 했어, 나도...


 키는 작았지만 나름 거친 생활을 해오며 익혀왔던 킥복싱으로 단단히 단련된 녀석이었다. 온 몸이 차돌같은 근육으로 똘똘 뭉쳐있고, 거쳐온 세월이 만만치 않았던 만큼, 강단과 깡을 가진 친구였다. 하지만 이 대화를 끝마칠 때쯤 그 친구의 눈시울은 그렁그렁 붉어져 있었다. 

 여러분들은 위의 대화를 읽고, 이 식물의 무서움을 느끼셨는가...? 이리니는 지금도 몸에 소름이 돋아나려 한다.
그 무서움을 조금 정리해 보자.


 화학적 중독의 무서움  

 

 사실 이 중독의 무서움은 금연을 시도해 본 흡연자들이라면 누구나 다 잘 알 것이다. 담배뿐만 아니라 익히 잘 알려진 마약, 알콜, 약물 중독은 모두 '화학적 중독'이다. 그에 따라, 그 특정 화학 물질의 공급이 중단될 경우, 소위 말하는 '금단 증상'을 경험하게 된다. 바로 여기다. 이 화학적 중독의 무서움이 도사린 곳이...

 몸에 해가 되기 때문에? 당연한 소리다. 하지만 이 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 이 화학적 중독은 인체, 즉 몸에 영향을 미친다. 물리적이며, 화학적이고, 생물학적인거다. 이렇게 얘기해 보자.

 여러분들의 몸에 감기가 들어 아프다고 가정하자. 이리니가 여러분들에게 이걸 요구한다고 또 가정하자.
여러분들의 의지의 힘을 사용해 그 감기로 인한 아픔, 고통을 없애 버리세요. 
그 감기를 몰아내 버리세요.
 이거 가능한가? 아시다시피 불가능하다. 이런 말을 한다면 너무 절망적일까...?

화학적 중독의 힘과 인간 의지의 힘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화학적 중독은 사실상 인간 의지의 힘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 바깥에 존재한다.
 
 말이 어려운가? '차원이 다르다'를 이렇게 이해해 보자. 여러분들의 몸을 가지고 여러분들의 마음과 관련된 생각, 감정 등을 설명하려 애써 보자. 해보면 이게 되지 않는다. 몸 어디서 생각이나 감정을 찾아낼 수 있겠는가? 즉, 몸과 마음은 전혀 다른 차원인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화학학 중독은 굳이 말하자면 몸의 차원이다. 하지만 인간 의지는 마음의 차원이다. 마음으로 찢어진 상처를 없앨 수 있는가? 그 찢어진 상처로 인해 생겨나는 고통을 없앨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그와 마찬가지로 심적 의지를 가지고 화학적 중독 자체를 없애 버릴 수는 없다. 사실상 이 중독에 있어서의 의지는 그냥 '참는다' 수준에서 그친다. 참고 참으면서, 육체 자체의 치유 매커니즘이 육체를 일정 수준 이상 회복해 줄 때까지 그냥 기다리는거다.

 정리하자면,
 상처가 생기면 고통이 생긴다. 의지로 이 상처를 치유할 수도, 그 고통을 없앨 수도 없다. 
 일단 화학 물질에 중독된 이가 그 물질의 공급을 중단하면, 육체적 고통이 생긴다. 이 고통은 인간 의지로 없애 버릴 수 없다. 계속 그냥 고통스러운거다. 누가 있어 그 고통을 좋아하고, 사랑하겠는가? 그래서 계속 그 중독 물질을 찾게 되는거다. 그것만 집어 넣으면 그 끔찍한 고통이 순식간에 없어지니까.

 이것이 바로 화학적 중독을 의지로 이기는 것이 그토록 힘든 이유다.
 사실상 '의지로 중독을 이겼다'의 진짜 의미는 '그냥 그 고통을 참아냈다'일 뿐이다. 이긴 것이 아닌거다. 



 더 무서운 정신적 중독  

 

 그 친구의 삶을 간략히 한번 그려보자.

 잠이 안 온다. 혹시나 싶어 그걸 찾는다. 마음이 편해지며 잠이 든다. 다른 날 또 잠이 안 온다. 이 생각 저 생각, 이 고민 저 고민으로 뒤척이니 괴롭다. 또 그걸 찾는다. 잠이 든다. 또 잠이 안 온다. 또 그걸 찾는다. 계속된다.

 다른 사람과 갈등을 겪는다. 마음이 불쾌하고 불편하다. 그걸 찾는다. 손쉽게 순식간에 마음이 편해진다. 다음에 또 갈등을 겪어 마음이 불편하다. 또 찾는다. 계속된다. 

 이런저런 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열을 받았다. 가만 있자니 그 스트레스와 열뻗침은 계속 된다. 속이 부글부글 끓으며 불편하다. 참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제 손쉬운 방법을 알고 있다. 그걸 찾는다. 다음에 또 스트레스를 받으면? 또 찾는다. 왜? 손쉽고 간편하게 쌓인 스트레스와 괴로운 불편함을 없애버릴 수 있으니까. 또 계속된다. 

 여기에 도사리는 무시무시한 함정의 정체를 잡아내셨는가?

이 친구는 이제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무조건 그것을 찾게 되었다. 가벼운 두통? 몸이 찌푸드드하다? 컨디션이 안좋다? 습관적으로 그걸 찾았다. 사람이 삶을 살다보면 '삶의 부침'이라는 것을 피할 수 없다. 한마디로 마음이 불편해지는 일이 끊임없이 계속 일어나는 것이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이 친구는 이런 일이 생길때마다 습관적으로 그것을 찾게 되었다. 

 한마디로? 
모든 문제를 그거 하나로 회피하기만 할 뿐, 정작 자신의 삶을 정정당당히 주체적으로 살고 있지 못했다. 
 

삶이란 무엇일까? 인간은 무엇을 재료로 성장, 성숙해갈까? 
맞다. 인간은 삶 속에서의 갈등, 다툼, 불행 등의 온갖 문제들을 맞딱드리며 괴로워한다. 괴롭기 때문에,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 문제들을 해결해서 그 고통과 괴로움을 없애려 한다. 그 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하고, 고심하며 발버둥 친다. 그 고민, 고심, 몸부림의 와중에 인간은 성장, 성숙, 발전해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삶이며, 이것이 바로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 친구는? 오직 피하고, 회피하며 제자리만 뱅글뱅글 맴돌고 있었다. 성장할 수 있는 기회, 대마초 연기로 날려 버렸다. 성숙할 수 있는 기회, 연기로 흩날려 버렸다. 삶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만 빙빙 돌고 있는 어린아이가 되어 버렸다. 성장이 정지해버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친구의 눈에서 후회와 회한의 눈물이 흘러야만 했던 이유다. 
 그 친구는 '자신이 살고 있지 않다, 살아 있지 않다'를 느껴 버렸는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중독이란...?  

 

인간의 몸뿐만 아니라 '정신'을 망가 뜨려, 인간을 인간이지 못하게 한다. 

 
 중독을 피하려면...  

 

단순하다. 
그냥, 애초부터, 시작부터, 처음부터, 중독의 가능성이 있는 것은 손을 대지 않는 것이다. 
무조건 그냥 멀리하는 것이다.

일단 중독되면? 고통, 괴로움, 불행같은 여러분들이 지독히도 싫어하는 것들을 피할 수 없다. 


 마무리  

 

 한 학생이 있다. 시험이 닥쳐 온다. 이 현실은 괴롭고 힘들다. 그래서 피하고 싶다. 컴퓨터로, 게임기로 달려간다. 게임 속으로 빠져든다. 현실은 괴롭고 힘들지만, 게임은 정반대, 재미있다. 그래서 계속 한다. 자신의 성적, 자신의 미래를 포함한 자신의 현실을 피해, 가상의 게임 공간으로 끊임없이 도망가려 한다. 이것이 '게임 중독'이라는 정신적 중독이다.

 한 직장인이 있다. 삶이 힘들고 괴롭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사람을 때때로 미치게 한다. 생각만해도 열이 뻗치고 가슴이 부글거린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듯한 자신의 현실을 생각할 때마다 답답해서 돌아버릴 지경이다. 손에 리모컨을 들고 TV를 켠다. 그 속에서 펼쳐지는 온갖 가상의 스토리, 자신의 현실과는 전혀 다른 참으로 멋진 세상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TV를 보고 있을 동안은 그 괴로운 자신의 현실을 잊을 수 있다. 그래서 자꾸 켠다. 또 켠다. 습관적으로 켠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 안으로 도망간다, 고단한 자신의 삶을 잠시라도 잊고, 피하기 위해. 이것이 바로 현대인들의 대다수가 앓고 있는 'TV 중독'이라는 정신적 중독이다. 

 회피하고 도망가는 것은 참으로 쉽다. 하지만 이 사실을 기억하자. 
 여러분이나 나나 그 속에 빠져 있을 동안은 살고 있지 않은 것이다. 살아 있지 않은 것이다. 수 십년 밖에 주어지지 않은 귀하디 귀한 삶을 연기로 태워 없애고, 컴퓨터, 게임기, TV 라는 수채 구멍으로 구정물 버리듯 버려 버리고 있는 것이다. 

 게임을 즐기자. TV를 보며 즐거워하자. 하지만 습관적 중독에 빠져들어, 귀중한 삶을 허비하지는 말자. 
특히 그 대마초라는 괴상한 식물. 어쩌면 고달픈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사탕보다 달고, 연인의 입술보다 달콤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탕이 치아를 야금야금 갉아 먹듯이, 그 넘은 여러분의 마음과 정신을 야금야금 갉아 먹고, 종국에는 여러분 자신을 썩어버리게 만들것이다. 절대로! 절대로 가까이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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