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니 연재/연애론

연인과의 이별, 애써 잊을 필요없는 이유

이리니 2009. 12. 24. 16:28

오늘 이 글은 헤어진 연인으로 인한 아픔을 가진 분들을 위해 쓰여지는 글이다. 

글의 영감을 제공하신 분은 '우유님'으로 이런 말씀을 댓글로 남겨주셨다. 
"... 그를 잊지 못하고 있었는데, 정말 죽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잊을 수 있게요."

이 말씀을 읽고, 한편으론 지나치게 차갑게, 매정하게도 들릴 수 있는 아래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졌다.
잊으려 애쓰실 필요가 원래 없어요. ^^ 

이리니의 블로그를 그간 아껴 주셨던 여성분들께서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이 쉐이...'로 시작하는 욕지기가 나오셨을지도 모르겠다. 욕은 글을 읽고 나서 나중에 하셔도 되니, 우선 아래의 글을 읽고 판단해 주시길 바란다. 

물론 이리니를 직접 보시면, 욕을 못하시긴 마찬가질거다. 아마... '이 녀석, 때릴 구석이 없군. 잘못하면 죽을지도...' 라는 생각을 하실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배짱으로 쓰는지도 모르겠다. ^^;;

오늘도 가슴에 담긴 이리니의 '선의'만이라도 잘 전달되길 기대하며, 글을 시작해 본다. 

* 약속되기로는 다음 글이 26일 아침에 예약 발행될 예정이었으나, 블로그 안쪽으로 계속 글이 쌓일 경우 이런저런 문제가 생길 수 있어, 비축분 하나를 방출하게 되었다. 양해를 부탁드린다. ^^


 인간 마음의 원초적 한계  

 


이 부분. 잘못 읽으면 단지 허접 '개똥 철학'이요, 잘 읽으면 참으로 유익한 내용일 수 있다. 이리니의 다른 글에서도 여러번 나왔던 내용이지만, 아쉽게도 이 부분에 주목하셨던 분은 여태껏 딱 한 분 계셨던 것으로 안다.

그 핵심을 바로 밝히고 싶다. 
인간의 마음은 한번에 한가지 일 밖에 할 수가 없다. 
 
이 부분은 명상, 내면의 관조 같은 자아 성찰에 익숙하신 분들에게는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 타고난 성향이 내향, 내성적이신 분들의 상당수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무엇보다 자신을 관찰, 관조하는 성향이 있는 분들께는 사실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이기도 하다. 

문제는 마음이 늘상 바깥 세상쪽으로 기울어 있는 일반인들은 이 당연한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늘상 '자기 마음', '나의 마음'이라는 소리를 달고 살면서도 정작 자기 마음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는 모르고 있는거다. 인간이 가진 여러 본질적 아이러니 중 가장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다. 

직접 자기 마음으로 간단한 실험을 해보시기만 하면 된다. 예를 들면, 한번에 두 가지 생각을 해보려 시도하실 수 있다. 해보시면 안될거다. 또는 몸을 이용하실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피부의 촉감을 느낌과 동시에 혀를 통해 미각을 느끼려 시도해 보실 수도 있다. 또는 눈으로는 사물을 보면서, 동시에 다른 생각을 가지려 애써 볼 수도 있다. 

이런 간단한 실험을 해보시면, 이 모든 것이 대단히 빠른 속도로 순차적으로 진행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실거다. 위의 예에 따르자면, 1번 생각 다음에 2번 생각, 촉감 바로 다음에 미각, 사물을 본 후 바로 이어지는 생각 같은 식으로 마음은 순차적으로 한번에 하나를 처리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때때로 사람들이 뭔가를 동시에 하는것처럼 보이거나 느껴지는 이유는 단 하나. 인간의 정보 처리 속도가 굉장히 빠르기 때문이다. 



 잊으려는 노력, 그 노력의 역설  

 출처

재미난 실험을 하나 해보자. 
이리니가 여러분들 앞에 빨간 사과 하나를 제시했다고 가정하자. 여러분들은 그 빨간 사과를 이미 쳐다봤다. 그 생김새도 기억 됐고, 그 모양도 기억이 됐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느닷없이 이리니가 여러분께 이런 지시를 내렸다고 해보자. 

"그 빨간 사과를 잊어 버리세요. 그 빨간 사과를 잊지 못하면 여러분들은 죽어요"

물론 죽진 않을거다. 또한 이 실험에 응하지 않으시는 분은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간단한 실험을 직접 짧은 시간이라도 집중해서 응해보신 분들은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아시게 될거다. 무슨 놀라운 사실...?

사과를 잊으려는 노력을 하면 할수록, 여러분들의 마음은 계속 사과를 생각한다. 
 
아마 이런 식일거다. '사과를 잊으세요'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여러분들의 마음은 대번에 '어 그래, 나는 사과를 잊을테야' 라는 생각을 내면서 이미 사과를 생각하고 있을거다. 아닌가? 이 노력을 계속하면 할수록 여러분들의 마음은 계속해서 그 잊으려는 사과를 생각 또 생각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것이 바로 인간 마음이 가진 역설이다. 

이 실험을 잘 이해하신 분은 대번에 아래의 말을 이해하실 수 있을거다. 
헤어진 연인을 잊으려는 노력은, 되려 연인을 자꾸 생각하게 만들며,
그 노력이 계속되면 될수록 연인에 대한 생각, 추억, 기억은 강화된다.

즉, 연인을 잊으려는 노력은 되려 연인을 더욱 잊지 못하게 한다. 



 해결책  

 


여기서 위 두 부분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고, 그 해결책을 내보자. 

1. 마음은 한번에 한가지 일 밖에 못한다. 
2. 헤어진 연인을 잊으려는 노력은 되려 그 연인을 더욱 생각하게 한다.   

해결책을 바로 쓰기 전에, 이해를 돕기 위해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아주 쉽다. 

"여러분이 사과를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 동시에 그 헤어진 연인을 생각하는 것이 가능할까...?"

위의 실험을 해보신 분은 이게 불가능하단 사실을 이미 아실거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단순. 
다만 마음을 헤어진 연인이 아닌 다른 쪽으로 향하게 하라. 그리고 거기에 몰입케 하라.   

그냥 이것 뿐이다. 물론 노력이 전혀 불필요하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습관적으로 마음은 예전의 익숙한 것으로 돌아가려는 고약한 습성을 가지고 있다. 자기 마음이 습관적으로 헤어진 연인을 회상하려 하거든, 이걸 재빨리 알아채고 다른 쪽으로 마음을 돌리려는 노력은 분명히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도 요령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기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몰입되는 대상을 고르는 방법이다. 자기가 흥미있어 하는 것, 재미있어 하는 것들 말이다. 

인간 마음의 원초적 기능은 아주 순수한 어린 아이, 순진한 애완동물들과 아주 흡사한 바가 있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에게 A라는 장난감을 던져주면, 이 강아지는 A에 무섭게 몰입한다. 그러다 잠시 후, B라는 장난감을 던져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 강아지는 조금 전의 몰입 대상 그 A를 까맣게 잊고, 또 다시 B에 무섭게 집착한다. 인간 마음 또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움직인다. 다른 것에 몰입해 있는 순간만큼은 헤어진 연인을 생각할 수가 없는거다. 

다만 문제는 인간이 가진 가장 끈적거리는 에너지, 바로 그 감정이다. 그 헤어진 연인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감정적 몰입이 있을 경우, 지금과 같은 글은 별다른 효과를 보기가 사실은 쉽지 않다. 때때로 이 상실의 아픔, 헤어짐의 고통은 정말로 가슴을 칼로 난도질하는듯한 고통을 선사하니까 말이다. 이리니는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애석하게도 오늘 글에서 이 부분을 다루기는 여의치가 않다. 언제 기회가 닿거든, 글로 한번 써보기로 하고 오늘은 언급 정도만으로 만족하자. 


 
 마지막  

 

과연 누가 있어 자신이 마음을 주고 있는 연인과 헤어지고 싶어할까?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난다. 어떤 이들은 그런 일 자체가 완전히 없어지길 희망하지만,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인간의 성숙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그 이상적인 천국에서 인간들은 어찌하며 살까? 틀림없이 인간들은 이럴거다. 

'그 또는 그녀는 내가 좋아하니 내 마음대로 할테야. 나의 것이란 말이야!'
'그 또는 그녀는 무조건 내 말을 들어야 해. 내가 좋다는대로만 해야 해.'
'그 또는 그녀는 나의 원함대로, 나의 욕망대로, 나의 욕심대로 해야 해.'

이런 어린아이 상태로 계속 머물게 될거다. 아닌가...?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라. 대다수의 사람들, 남녀들, 연인들은 여전히 이런 상태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실거다. 그래서 아픔이 필요해진거다. 그래서 괴로움이 필요해진거다. 그래서 헤어짐, 다툼, 갈등, 고민, 번뇌 등이 필요해진거다. 이런 것들이 없으면, 인간들은 성숙하려하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진리와 섭리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픔과 괴로움이 싫거든, 성장하고 성숙해져라."
"갈등과 다툼, 헤어짐이 싫거든, 이해와 사랑, 배려를 배워라."
"그 뼈아픈 불행이 싫거든, 앎과 지혜를 구하라."

모든 인간들은 이러한 배움의 여정 중에 있는 이들. 어찌 완전한 사랑과 성숙을 논하리. 글쓴이도 그 어리석음과 눈 멈이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지만, 다만 아는 것만이라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적었다. 상실의 아픔, 헤어짐의 고통이 있는 그곳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아름다운 생(生), 기쁜 생(生)을 누리시길 희망하며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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