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니 연재/연애론

오빠 동생 사이, 남자들도 때론 원하는거야.

이리니 2010. 1. 14. 06:44

오늘은 제 삼자에겐 강 건너 불구경이고, 당사자에겐 애가 끓고, 피가 끓는 오빠 동생 사이에 대해 잠깐 얘기해 보려한다.



 전형적 사연  

 

대학교 2학년인 김 모양. 이제 멋모르는 새내기 티도 벗었겠다, 한 1년 넘게 대학생활을 하니 '아, 요것이 대학생활이구나...'하는 통밥[각주:1]도 대충 잡게 됐다. 마음의 여유도 조금씩 생기고 하니, 슬슬 여고시절 꿈꾸던 꿀같이 달콤한 연애에 대한 환상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그러던 차...

예비역 오빠 연 모군(25세. 방위)이 뜬금없이 이렇게 물어온다. '야, 밥 먹었냐?'. 아니라고 답했더니, 밥을 사준댄다. 밥을 다 먹고 났더니, 친절하게도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도 준다. 서글서글 웃는 얼굴로 농담도 어찌나 잘하는지, 하마터면 커피가 코로 나올뻔한다. '아, 이 선배 참 재미있는 사람이구나'란 생각이 든다. 

다음 날. 어? 어제 밥을 같이 먹었던 연선배가 오늘은 술을 사준댄다. 공짜술이니 사양할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과 '나도 이제는 어엿한 어른이야'라는 생뚱맞은 착각으로 무장한채 또 쫄래쫄래 따라간다. 한잔 두잔 술이 들어가니 마음의 긴장도 풀리던 차에, 연 모군의 알뜰살뜰 챙겨주는듯한 모습에 은근 기쁨이 배가된다. 대학가 술자리가 늘상 그렇듯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연선배의 얼굴이 더욱 자세히 보여서 좋다.

술자리를 파해야 할 늦은 시간. 연선배가 택시를 타는 곳까지 바래다준단다.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인적도 드문 고즈넉한 시간에, 비록 선배지만 남자와 단 둘이 같이 있자니 왠지 분위기가 야리꾸리하다. 헌데...

"너. 폰 번호가 어떻게 돼?"

콩닥. 콩닥. 저 말을 듣는 순간을 기점으로 김 모양의 심장은 무섭게 뛰기 시작한다. '왜? 대체 왜 내 폰번호를? 설마? 설마...?'

"편하게 연락하고 지내자. 주말에는 보통 뭐해?"

쿵.쾅.쿵.쾅. 심장이 가슴뼈를 뚫고 나올것 같애. '이 사람이... 정녕 이 사람이...'.

엉겁결에 번호를 주고 받곤, 얼떨떨한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온 김 모양. 어떻게 알았는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잘 도착했니? 오늘 즐거웠어...♡'라는 문자가 도착한다. 허거덕! 저... 저... 제일 마지막에 붙은 것은... 하... 하트... 겨우 진정됐던 심장 박동이 다시 거세지기 시작한다. 뒤늦게 술기운까지 올라오니 정신마저 혼미해지는 상황. 하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오직 머리 속을 맴도는 생각은 단 하나. '드디어. 드디어 내게도 그게 찾아온거야...'

시간은 늘상 그렇지만 흐르고 또 흐른다. 연선배와 같이 먹었던 끼니가 수백끼를 넘고, 같이 본 영화는 수십편에 달한다. 또 그 얼마나 오랜시간 같이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었는가? 그러던 어느 날, 정말이지 청천벽력 같은 날벼락을 맞게 된다. 연선배의 오랜 여친이 계룡산에서 도를 닦으며 은거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 것이다.

'이럴수는 없어. 이럴수는... 그 인간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수가...'.
선덕여왕의 '미실' 전용 표정을 지으며 이를 갈아 붙이고, 눈으로는 독기를 뿜어내던 차에 한 구라 전문 블로거를 방문하게 된다.

"이리니님. 이러이러 저러저러한 일이 생겼어요. 그 인간의 마음은 정녕 뭘까요? 양다리였던걸까요? 아님 엔조이? 그 나쁜 인간의 마음을 도저히 알 수가 없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그 인간은 이렇게 답한다. 
"어린 소녀여, 그것은 다만 그대가 어리기 때문이니라. 
남자도 친한 여동생을 둘 수 있음이니, 그를 남자로 보지 말거라..."



 어린 청춘들의 착각  

 

① 폰 번호. 그냥 물어볼 수도 있다.

언젠가 한 연예인이 '싸인 좀 해주세요'라는 소리를 듣게 됐다. '아, 이 사람이 날 알아보는구나'라는 기쁜 마음에 늘상 준비해 가지고 다니던 새야한 종이에, 열심히 연습했던 싸인을 일필휘지로 적어 미소와 함께 그에게 건넸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거기 말고, 여기 카드 영수증에...'라고 했다는 민망한 전설이 있다.

'저기, 폰번호가 어떻게 되세요?'가 꼭 '저는 당신에게 관심이 있어요'라는 뜻이 아닐 수도 있다. 또 '당신에게 관심이 있어요'라는 뜻이라 할지라도, 그 앞에는 '선배로서, 후배로서, 동료로서, 친구로서' 같은 많은 수식어가 붙을 수 있다. 꼭 '이성으로서'는 아니란 것이다


② 문자는 그냥 문자다. 

'집에 잘 들어갔니?'라는 문자를 '난 네가 걱정되서 죽는줄 알았어'의 뜻으로 해석하지는 않는가? 
'지금 뭐해?'라는 문자를 '난 네가 지금 뭘하고 있는지 궁금해 미칠것 같아'의 뜻으로 해석하지는 않는가?
'이상하게 잠이 안와서'라는 문자를 '네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어'의 뜻으로 해석하지는 않는가?

예전 한 유명 '수능 언어 영역' 강사의 말이 생각난다.

"제발 지문을 있는 그대로 읽고, 있는 그대로 해석하세요. 
그 지문에 자신의 생각, 상상, 유추, 추론 따위들을 덧붙여 답을 고르지 마세요. 그럼 틀리니까..."

혹 여러분들은 80자의 문자를 받고선 혼자 열심히 장편소설을 쓰시지는 않는가?


③ 끝에 붙은 하트(♡), 그냥 이모티콘일 뿐. 

'문자에 무심코 붙힌 하트 때문에 그와 사귀게 됐어요'라는 댓글 사연이 있었다. 이 댓글을 본 이후로, 이리니는 습관적으로 문자에 하트를 붙여 보내고 있긴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런 운빨(?)이 있을거라 믿진 않는다.

매일 쉼없이 '오빠 외롭죠? 제가 있어요~ ♡'카는 문자가 날아드는데, 도대체 얼마나 많은 얼굴 모르는 여인들이 이리니를 사랑하고 있단 말인가? 이거 단지 스팸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에게 날아드는 문자에 달린 하트, 그거 '사랑' 때문일 수도 있지만, 단지 예의상, 그냥 심심해서 붙힌걸 수도 있다. 또 꼭 사랑이라는 것이 이성으로서의 사랑만 있는 것도 아니질 않은가? 


④ 밥, 혼자 먹으면 원래 맛이 없다. 

'저랑 같이 식사 하실래요?'라는 말은 분명 '저 당신에게 관심 있어요'라는 뜻일 수 있다. 하지만 '혼자먹기 뻘쭘하니 같이가서 둘이서 뻘쭘해요'라는 뜻일 수도 있다. 계속해서 같이 식사하자는 말이 '저는 계속 당신에게 관심이 가요'라는 뜻일 수도 있지만, '저는 친구가 없어요'라는 뜻일 수도 있는 것이다.


⑤ 술은 사람을 먹는다.     

'술 한잔 하자'란 소리는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로 유명하다. 이리니 또한 대학시절, 무수히 많은 선후배들에게 이런 류의 사기를 치고 다니곤 했었다. 어디 악의가 있어서 그랬겠는가? 다만 인간적인 유대 차원에서 뱉어내는 인사치레 같은 것일 뿐이었다. 물론 여자 후배들에게도 여러번 뱉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상당수의 후배들이 눈을 똥그랗게 떴던걸로 기억한다. 대체 무슨 생각들을 했던걸까?

'그와 술을 함께하며 참 많은 얘기들을 했었죠...'로 시작하는 사연들도 꽤 있다. 아마 어떤 분들은 이 술자리에서의 유대와 교감을 크게 치는 모양인데, 그게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 많이 간과된다. 특히 남자들은 이 '술자리를 통한 친해지기' 수법을 아주 자주 사용하는데, 해보신 분들은 너나없이 알겠지만, 사실 별 신통한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술에 찌들어 있을 때야 어깨 동무를 하고선 형님, 아우 어쩌고 하지만, 술 깨고나면 그 목숨마저 내어줄듯 했던 형님-아우 사이는 온데간데 없더라는 것이다.

술은 사람을 먹는다. 
당신에게 사랑을 고백했던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알콜'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빠 동생 사이, 어려웠다.   

 

예전 글에서도 밝혔듯이, 이리니는 이 '오빠-동생 사이'를 맺는 것이 대단히 어려웠다. 왜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말을 건넸던 대다수의 여자 후배들, 심지어는 여자 선배들조차도 이리니를 '남자'로는 볼지언정, '그냥 한 사람'으로는 봐주지 않았었다.

직장에서도 이 불편함은 계속 이어졌는데, 솔직히 여간 짜증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한 때, 남자보다는 여자들의 수가 많은 직장에 몸을 담은 적이 있었는데, 소위 말하는 '직장 동료애'라는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냥 동료니까 편하게...'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말하고 행동했다간 금세 스캔들 비슷한게 나곤 했었다. 참으로 놀라웠던 사실은, 그 어떤 여직원도 이리니를 그냥 사람으로는 보지 않더라는 것이다.

'술 한잔하자'는 이리니의 말은 금새 '저 남자가 나한테...'로 변질됐고, '식사 같이 해요'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직원들이 이리니에게 던지는 '같이 운동해요'는 그 말 뜻 그대로가 아니라, 거의 언제나 '데이트 겸...'이라는 의미가 들어가 있곤 했다. 이미 결혼을 한 유부녀들은 어땠을까? 음... 생략하자. --;

예전부터 '남자와 여자는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다'를 주장하는 쪽은 대체적으로 남자들이었다. 이에 몇몇 여자들이 '아냐. 될 수 있어'라고 주장했고 말이다. 헌데 개인적 경험으론 '남자와 여자 사이의 친구관계'를 정작 원치않는 것은 여자들인 것으로 보였다. 단지 친구, 동료, 선배, 후배로서 보는 쪽은 언제나 이리니였고, 상대들은 언제나 '남자'로서 였으니 말이다. 이거 단지 착각인걸까?

재수없는 자기 자랑일 수도 있지만, 정말 여자들의 눈물을 많이 봤다. 후배건, 선배건, 직장 동료건 간에, 대쉬를 난데없이 들어오고선, 이리니가 받아주지 않으면 눈물을 보이거나 이상한 행동들을 하곤 했었다. 개중 몇몇은 정말 '난 널 저주해' 같은 눈빛을 끊임없이 쏘아대기도 했는데, 학교건 직장이건 정말 견디기 힘들 때도 있었다. 

이런 경험. 정말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해서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꼭 이런 얘기를 전하고 싶었다. 

아주 극소수의 여성들에게만 '이성으로서의 감정'을 느끼는 남자들이 있다. 

이런 입맛(?) 까다로운 남자들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이리니는 이런 괴상한 부류의 남자에 속하는데, 문제는 이런 남자에게 대다수의 여자들은 여자로서 보이지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럼 이런 남자에게 어떤 여성이 대쉬를 들어갔고, 그 여성을 그 남자가 여자로서 보지 않는다면 어떨까? 돌아올 반응은 '응? 뭥미...?'라는 것이다. 이럴 때, 분명 그 상대 여자는 극심한 상처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알리는 것이다. 그래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요점 정리  

 

글이 징그럽게 길었지만, 요점은 딱 두개다. 

1. 상대의 행동, 말, 연락, 문자 등을 소재로 소설을 쓰지 말자.
혼자 생각, 자기만의 상상을 버리고,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정직한 눈을 가져보자.

2. 이성을 사귈 생각이 없는 남자, 대다수의 여자를 여자로 보지 않는 남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런 남자에게 마음을 줬는데, 그가 받아주지 않을 때, 상처를 받을 필요는 없다는 사실도 기억하자.
'허, 그 놈 참 별나네...'하고 끝내라는 소리다. 제발 울지 말라는 소리다. 제발... ㅠ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다. 날씨가 무섭게 춥던데, 건강 유의 잘 하시길 바란다.
음... 입맛이 까다로우면, 옆구리가 시리다는 사실. 혹시 아셨는가...?
추위가 뼈에 사무친다... --;

   << 저처럼 옆구리가 시리신 분은 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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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떤 문제에 있어서 어떠한 과정이나 방법을 거치지 않고 임의대로 찍어넘기는 것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