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니 연재/연애론

남녀의 인연, 정말 하늘이 내린다면...

이리니 2010. 1. 19. 07:00



인연(因緣). 글의 소재로 선택하긴 했지만, '참, 인기가 없겠구나'란 생각이 절로 든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이런 소리들을 좋아한다. 

"이렇게하면 당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어요."
"저렇게하면 당신이 원하는 사람을 가질 수 있어요."

저런 소리들을 늘어놓는 책이나 글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고. 허니 베스트셀러라 하는 책들의 대다수가 '한달만 열라 하면 영어 마스터 가능', '나만 따라하면 10억 뚝딱', '상상만 해도 원하는 모든게 이루어지는 고대의 시크릿' 같은 책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람들은 가지고 싶어 한다. 

동일한 이유로, 많은 분들이 이런 질문들을 이리니에게 던져오고 있다. 

"나는 그 사람을 가지고 싶은데, 그게 안돼요. 그래서 괴롭고 슬퍼요. 어떻게 해야 하죠?"
"나는 누군가가 필요한데, 계속 혼자여서 외롭고 슬퍼요. 
언제쯤이면 제 곁에 누군가가 생길까요?"

오늘 이 글은 위의 질문들에 대한 이리니의 '우화적 대답' 이다.  



 Story of Souls  

 


정신이 곧 자기이자, 자신(自身)인 영혼들이 모여사는 곳. 인간들 사이에선 영계(靈界)라 불리우는 곳이다. 찬란한 빛이 언제나 만물을 사랑으로 감싸고 있는 영계의 한 이름 모를 정원. 두 영혼이 마주 앉아 열심히 뭔가를 궁리 중이다. 

"유리우스. 이번엔 네가 남편을 해보는게 어때?"

"음, 그럴까? 하긴 저번엔 휴즈, 네가 남편을 했으니, 이번엔 내가 하지 뭐."

유리우스와 휴즈. 이들은 기억조차 힘든 시간의 저편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구로의 환생을 함께 해오고 있는 영혼 친구들(Soul Mates)이다. 인간들의 시간으로 수 십년에 달하는 영혼의 휴식기를 마친 둘은 또 다시 시작될 환생 체험에 대비,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계획을 짜고 있는 중이다. 

"휴즈. 이번에 맺게 될 부부의 연은 조금 힘들겠던데, 괜찮겠어?"

"조금 많이 다투게 되긴 하더라, 그치? 하지만 어쩌면 유리우스 네가 더 힘들지도 모르겠던걸?"

"아, 그 육체가 지닌 폭력성? 휴, 나도 걱정이 조금 되긴 해. 내가 제대로 그 육체를 제어하지 못하면 저번 환생 때처럼 또 네가 그 폭력을... 휴... 정말 미안."

"그만. 이미 지나간 일이야. 또 나도 그런 실수들은 얼마든지 했었고. 우리 둘 다, 이번에는 정말 쉽지가 않겠어."

"그래. 폭력적인 남편과 그 폭력에 시달리는 아내라..."

체험을 통한 영혼의 성장을 위해 안배된 환생이라는 배움터. 하지만 그 배움이란 언제나 고통을 수반하기 마련이니, 이번에 주어진 그들의 환생 과제 또한 녹녹치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난 할거야. '동물적인 육체의 제어', 난 언제나 이게 힘들었지. 매번 환생때마다 이 부분에서 실수를 되풀이 하는 통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았어? 이젠 그만 끝내고 싶어. 꼭 성공하고 말테야. 휴즈, 힘들겠지만 좀 도와줘."

"누가 누굴 돕는다고 그래? 서로 돕는거지. 나야말로 이번에는 기필코 '사랑에 대한 두려움'을 뛰어 넘고야 말겠어. 연이은 사업 실패로 점점 폐인이 되어가는 남편. 기필코 온전히 안아주고야 말테야. 날 윽박지르고 때로는 폭력마저 행사할 남편이지만, 기필코 사랑으로 보듬어주고 말테야. 나야말로 잘 부탁해, 유리우스."

비록 각자가 선택했다지만, 그 무게가 실로 가볍지 않은 과제 탓일까? 둘의 영체가 조금씩 어두운 빛으로 물들어 가려는 찰나,

"아 참, 너 그건 뭘로 정할래?"

어두워지는 둘의 에너지를 먼저 눈치챈 휴즈가 먼저 화제를 돌린다. 

"그거라니, 뭐?"

"뭐긴 뭐야, 싸인 말하는거지."

"아~ 싸인. 넌 뭐가 좋겠어? 저번처럼 눈웃음으로 할까?"

"아냐. 그건 전에 했으니, 이번에는 좀 기발한 걸로 해보고 싶어."

이 둘은 비록 영혼의 짝으로서 동시대에 환생할 계획이지만, 그렇다고 동시에 같이 환생하는 것은 아니다. 육체가 태어나는 시기가 정해져 있으니, 사실은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환생하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그 육체가 동일한 공간을 점유한다는 보장도 없다. 어떨 때는 전혀 다른 나라들에 흩어져 있는 육체를 통해 환생하기도 하니 말이다. 이번에는 같은 나라이지만, 지역적으로는 조금 떨어져 있는 남녀 육체 둘을 통해 환생할 계획이다. 

"우리 언제 만나게 되지?"

"남자 육체가 35세, 여자 육체가 29세일 때. 한국 서울이라는 곳에서."

"장소는 편이점이고 말이지. 근데 왜 하필이면 편의점이야? 다른 낭만적인 곳도 많은데."

"사랑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창조주의 뜻이 아닐까?"

"하긴..."

한쪽은 35년, 다른 한쪽은 29년의 시간을 완전 남남인 상태로 각자의 삶을 영위하다, 어느 한 순간의 결정적 만남을 계기로 '인연(因緣)'이 생기도록 되어있는 운명인 것이다.  

"뭘로 할까? 싸인..."

"조금 우발적인게 어때?"

"예를 들면...?"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가다 우당탕탕."

"우당탕탕? 아, 부딪친다...?"

"응. 둘이 부딪쳤다가 끙끙대며 일어선다. 그리고선 눈이 마주친다. 바로 그 때!!!"

"첫 눈에 반한다? 그러고선 갑작스레 '바로 이 사람이야!'를 느낀다? 마치 천생연분처럼...?"

"응. 조금 그런가?"

"킥킥킥, 아냐. 재밌겠어. 난 좋아. 찬성!"

"그래, 그럼 그걸로 정한거다."


* * * * *      * * * * * 


2010년. 01월 19일. PM 08:48  지구별 대한민국 서울. 

퇴근 후 출출하던 배를 라면과 깁밥으로 때운 35세의 몽룡.
연일 이어지는 '솔로 증후군'을 야식으로 달래려던 29세의 춘향. 
강북 모 편의점 앞에서 충돌. 


2025년. 01월 01일. AM 09:00

몽룡과 춘향의 아들, 춘몽이가 엄마에게 이렇게 묻는다.

"엄마. 아빠 처음 만났을 때 어땠어...?"

"만나자마자 '바로 이 사람이야!' 싶었지. 뭐, 만난게 아니라 콰당이었지만... 호호호."




 마무리  

 

예전에 들었던 영혼에 대한 얘기를 각색해서 적어봤다. 사실 '인연'이라는 것을 오직 이런 식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 '가능성'에게만은 마음의 문을 열어놓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이리니는 이 글을 통해 이렇게 묻고 싶은 것이다. 

만약 위와 같은 일이 여러분들의 믿음과 관계없이 '사실'이라면,
진정 '운명적인 힘'이 개입하는 '인연'이라 하는 것이 있다면,

여러분들의 과거 연인에 대한 후회, 미련, 애증, 저주, 상처, 집착...,
현재 홀로인 것과 관련한 온갖 복잡한 마음과 감정, 현재 연인과의 갈등과 다툼, 
미래에 누구를 만나게 될지에 대한 걱정과 근심 혹은 계속 혼자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저 사람을 가지고 싶어'라는 욕망, '저 사람의 마음을 나에게로...'라는 욕심. 

이 모든 것들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현대의 많은 이들은 '운명'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질색한다.
현대의 많은 이들은 '인연'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불신(不信)을 말한다.
왜...? 자기 마음대로 안된다는 얘기니까. 자기 욕심대로 할 수 없다는 얘기니까. 

정녕 '운명', '인연'이라는 것 안에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없는 것일까...? 

누군가를 소유하려 애쓸 필요가 없는 자유.
관계를 자기 마음대로, 자기 욕심대로 하려 노심초사할 필요가 없는 자유. 
이게 이렇게 될까, 저게 저렇게 될까... 걱정하고 근심할 필요가 없는 자유.
모든 것이 정해진대로, 섭리대로 물이 흐르듯 그렇게 흘러갈 것을 앎으로써 생기는 자유.

이 자유를 아는 자가 진정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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