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니 습작/이리니의 사연

'스마트 폰' 때문에 '중년'을 느끼다.

이리니 2009. 12. 10. 18:49


 아이뽕(응?), 엄니야(으응?), 빨리 베리(엉?)... 에... 또 뭐가 있더라...
 얘네들이 일명 '똑똑한 전화기'라지...?

 이리니가 얘네들에 대한 소문을 처음 접했을 때, 워낙에 똑똑한 애들이라니까 이런 상상을 했거든.
 '알람' 맞춰놓으면, 알아서 깨워주고,
 다른 여자랑 있는데 여친 또는 아내에게서 전화오면, 지가 알아서 사뿐히 씹어주고,
 스팸이 날아오면 알아서 즉각 반격, '이것들아! 내가 왜 니 오빠니? 내가 바로 니 애비다!' 역문자도 날려주고,
 앞에서 솔로녀가 접근해오면, 주머니 속에서 은근슬쩍 '톡!톡! 얌마 기회얏!' 하며 찔러도 주고,  
 뭐 그럴줄 알았거등. 근데 그 정도로 똑똑한 넘은 아니더군.
 단 하나 마음에 드는거라면, 아이뽕. 여자 치마를 들출 수 있다지...?
 '아이뽕 투'가 나오면 아마 닦아주는 기능도 나올듯... 화이팅! 스팁 쫍스.

 문제는 내가 아직 이 녀석들 구경도 못해봤다는거...
 촌구석에 쳐박혀 하늘을 지붕삼고, 땅을 발판삼아 자연과 함께 노니는 촌넘이 전화질을 할 일이 있어야지.
 '오빠 뭐하삼?'이라는 문자에 '존재함...'이라 답하는 과묵 경상도 넘이 문자질을 할 일은 더더욱 없겠고.
 1번 문자, 2번 문자 그에 뒤이어 3번 문자. 여기까지가 한계... 
 4번 문자가 날아오기 전에, 잽싸게 '통화' 버튼 질끈, 딱 한마디만. 
 '어이, 할 말 있음 걍 전화. 뚜우~~~~~'
 음... 이래서 떠나간 여인이 몇이던가...
 그래도 괜찮아. 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자니까(응?)...

 얼굴 불친절, 말투 친절의 은행 여직원에게 백원짜리 동전 몇개를 슬며시 밀어 넣으며, '입금'을 외쳐놓곤
 잽싸게 달려나와 '돈 기계'에서 만원짜리를 꺼내곤 하던 '돈 넣고, 돈 꺼내기' 도박에 물들었던 시절.
 굽은 허리, 쪼그라든 피부, 새하얗게 바래 버린 머리칼을 광포히 흩날리며,
 돈 기계 앞에 뻘쭈미 서있는 노 도인들을 보게 된다.
 삶의 풍파를 거침없이 헤치며 지금까지 살아 남았건만, 남은 것이라곤 자식들과 기계들의 무시뿐.
 '에러, 에러', '비번이 틀렸삼', '통장 똑바로', '어이, 확인을 눌러야쥐'
 비번 세번 틀리면, 이젠 빼도 박도 못한다. 

 그 모습을 뻘쭈미 지켜보던 중, 재수없게도 거울에 반사된 한 촌넘의 모습을 보게 된다. 
 흰머리가 이젠 만만치 않아. 주름도 늘었군. 어라? 허리도 좀 굽은듯... 쓰읍, 역시 컴을 끊어야...
 여전히 기계 앞에서 어쩔줄 몰라하는 노 도인과 이 촌넘의 모습이 묘하게 오버랩.

 왼손은 똑똑한 전화기를
 오른손은 빠큐 자세로 경직.
 어쩔 줄 모른다. 
 눌러야하나? 뭘? 다져야하나? 아님 돌려야? 제끼는건가?
 나이가 드니 손도 떨리네. 3을 눌러야지...하는데, 정작 손은 4로 가.
 옆에 있는 젊은이에게 도움을 요청할라 치면, 이 쉐이 아이뽕을 열라 흔들며 여자 치마 들추느라 넘 바빠.
 쉐이... 젊을 때 아껴. 나이들면 골로 가.       
 
 듣자하니 기본료가 거의 10만원.
 전화질, 문자질, 인터넷질, 아이스케키질에 10만원.
 촌 넘의 구형 폴더폰 016 1년 통신비가 14만원인데...
 주 용도는 전화질이 아니라, 본인 인증.
 한국이라는 촌나라는 휴대폰이 없으면, '나는 나다' 즉, 자기가 자기란 사실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거든. 
 이넘들은 끊임없이 묻는거지. '너 진짜 너야? 확실해?', '너 폰 없잖아. 근데 네가 어케 너야...?'
 야이, 쓰바마. 그래 나는 나가 아니고, 016-OOO-OOOO이다. 됐냐? 

 결국 1년 통신비로만 기백만원. 공중에 뿌린다는거지. 전파로... 
 우주 끝까지 날아가 신(神)이 듣기라도 하나? '오케바리, 네 소원 등록 됐어. 안심, 등심~' 
 만약 이러면 기백이 아니라 기천도 쓰긴 하겠는데. 음... 근데 신(神)도 여간 연세가 많은게 아닐텐데...

 똑똑한 전화기도 없고, 
 넷북도 없고,
 노트북도 없고,
 네비도 없고, 
 사실 폴더폰도 분실신고 후 방치, 자동해지되서 휴대폰도 없다.
 휴대폰 요금 고지서에 '81원'이 찍혀 날아오던데...
 "케이티, 잘 먹고 잘 살아라. 2010년에는 꼭 부자돼라. 대신 이 벼룩은 피가 모자라 죽으련다."

 단 하나 가진 기계라고는 펜티엄 4 데탑 하나.
 그래서 때때로 불안해지는걸까...?
 기계한테 무시를 당할까봐...
 세상에서 영영 소외되어 버릴까봐...

 간혹 다른 이들의 폰을 빌려 쓰다, 당황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여는건가? 아님 밀어올려? 그래도 안되면...?
 오케이 버튼은 왜 안보여...? 응? 화면을 누르라고...? 왜? 지문 묻어서 지저분해지는데...
 그렇다. 이리니는 이미 중년.
 이미 소외 되었음에도 단지 그 사실을 모르고 살아왔던거다.

 해서 결심했다. 
 사각을 벗고 삼각을 입기로.
 7:3 가르마를 포기하고 6:4로 가기로.
 털신을 포기하고 어그로 가기로. 
 다큐를 포기하고 야동으로 가기로.
 핑클을 포기하고 원걸소시로 가기로. 

 하지만...
 한달에 전화질로 10만원은 죽어도 못 쓰겠다. 배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