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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니의 캔트노우

"외모 콤플렉스" 한 아이는 이렇게 넘었다.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약한 몸에 소심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였습니다. 홀로 어둠 속에 들어가 자신의 병약한 몸, 소심한 마음을 한탄하며 눈물 흘리던 아이였습니다.

다행이 큰 탈 없이 자라난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어딜가도 자기 또래보다 작았던 이 아이는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세끼 네끼의 식사로도 모자라할  때, 이 아이는 하루 두 끼를 벅차하니 제대로 자랄수가 없었던 겁니다. 

문제는 중학교 2학년에 접어들며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사춘기를 거치며, 자아의 성장, 그 인간성의 꽃이 피어나는 시기를 맞이 했습니다. 이 아이의 마음 한 구석에 이런 생각이 갑작스레 나타나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저 아이들은 저렇게 큰데 나는 왜 이렇게 작을까? 남자인데도 나는 왜 이렇게 작을까?

등하교 만원 버스 속에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부대낄 때마다, 자기 또래 친구들의 겨드랑이에 끼어 간신히 몸을 지탱하느라 안간힘을 써야할 때마다 이 아이의 마음 속엔 저 생각이 나타나 무럭무럭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아이는 너무 어려 답을 얻어낼 수 없었습니다. 이 내면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힘이 없었습니다. 곧 이 아이의 마음 속엔 다른 어두운 생각들이 곁가지를 치며 무서운 속도로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못났지? 나는 왜 이렇게 능력이 없지? 나는 왜 이렇게 어리석지? ...
이 끝없는 내면의 문제는 자라고 자라, 종국엔 하나의 끔찍한 생각으로 자라나게 되었습니다.

난 못났어! 그래서 그 누구도 날 사랑하지 않아!

이 때부터 이 아이는 사랑받지 못한다는 그 끔찍한 느낌에 서서히 함몰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아이의 부모들은 그 끝없는 사랑으로 이 아이를 보듬어 안아줄 수 있었습니다. 다독여 줄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랑의 힘이었을까요? 아이는 자라남과 동시에 서서히, 서서히 자신의 내면에 있는 '자각의 빛'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자신의 내면에 비추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자그마한 자각의 빛은 이 아이의 내면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안에 뭔가 잘못된게 있어. 그래서 이렇게 괴로운거야. 이건 나 자신이 직접 고쳐야만 해!

이 때부터 이 자그마한 아이는 자각의 빛을 따라, 성장의 길, 성숙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갓 태동한 자각의 빛은 너무나도 미약하고 희미해서 때때로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에 따라 이 아이는 때때로 어리석은 선택, 잘못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열등감만큼은 확실하게 감지했던 이 아이는 하나의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키를 크게, 몸집을 크게 할 순 없지만, 다른건 달라!

이 아이는 부모를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메이커, 브랜드 의류와 신발로 치장해 달라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안타까웠던 부모는 기꺼이 이 아이의 조름을 너그러이 받아줬습니다. 

그렇게 온 몸을 브랜드 의류와 신발로 치장한 아이는 6개월의 시간동안 만큼은 허리와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걸어 다녔습니다. 자기가 친구보다 우등하다 믿으면서 당당히 걸었습니다. 그 괴로운 열등감은 사라졌다 믿었습니다. 하지만 6개월의 시간  후, 또 다시 자각의 빛이 한층 더 밝아진 상태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빛은 이렇게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관찰해. 자기를 더욱 자세히 관찰해. 자신을 더욱 세밀히 관찰해. 주위도 바라 봐. 보라구!

온 몸을 예쁘게 치장한 자그마한 한 아이는 주변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6개월의 시간동안 자신의 주변사람들이 자신을 끊임없이 쳐다볼거라 믿으며 으스대며 걸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네들은 그네들의 몫인 자신들의 삶을 살아내느라 너무도 바빠서 이 아이를 쳐다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 때, 다시 내면의 빛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모습은 가 아니야. 좋은 옷은 가 아니야. 좋은 신발은 가 아니야. 나는 누구지?

이 아이는 중학교 2학년, 그 어린 나이에 내면의 빛의 도움을 받아, 겉모습의 허구를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더욱더 깊은 수렁, 이 아이를 일평생 잡아가둘 거대한 수렁이 생겨 버렸음을 이 아이는 이 때 몰랐습니다. 

사춘기가 절정을 치달아 갈 무렵, 몸은 서서히지만 남성의 골격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이 무렵부터 이 아이는 예상치 못했던 말들을 주변으로부터 듣기 시작했습니다. 

남자 녀석이 그렇게 이뻐서 쓰겠어? 남자 맞아? 여자 아냐? 제비하면 잘 먹고 잘 살겠는데...

하지만 이미 이 아이는 그 외모의 허구와 거짓을 알고 있었습니다. 잘 생겼든, 못 생겼든, 크든, 작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 자각의 빛은 점점 밝아지며 이렇게 얘기했기 때문입니다. 

이 얼굴 네가 만들었니? 아니잖아. 이 몸 네가 만들었니? 아니잖아. 네가 남자이길 선택했니? 아니잖아. 그렇다면 넌 누구지?

이 때 이후로, 이 아이의 눈에는 모든 사람의 외모와 육체는 단지 그네들이 입고 있는 옷처럼 보였습니다. 그네들의 몸은 '그네들 자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네들의 생김새는 '그네들 자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네들도 모르게 입게 된 운명의 옷,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이 아이는 자신도 이미 그 운명의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 아이가 장성한 청년이 되었을 때, 그 자각의 빛은 찬란한 빛을 띄기 시작했습니다. 그 빛은 끊임없이 이 청년에게 속삭였습니다. 

이 몸이 너니? 
이 몸에 대해 넌 뭘 알지? 
이 몸이 너라면 넌 왜 이 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
이 몸이 너라면 넌 왜 이 몸을 원하는대로 바꾸지 못하지? 
왜 더 크게, 더 예쁘게, 더 아름답게, 더 멋지게 만들지 못하지?
이 몸이 너니? 이 몸이 진짜 너니? 진정한 넌 누구니?

이 청년은 이 앎들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내면의 빛이 던져준 많은 다른 앎들도 나누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현자들이 말하는 '육체와의 동일시'라는 환상에 갇혀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채 100년도 살지 못할 그 육체란 옷을 자신으로 믿고, 그 몸을 위해 일평생을 바치고 있었습니다. 그네들은 그 몸이라는 옷을 자기라 여겼습니다. 그네들은 그 몸의 생김새가 자기라 여기며 괴로워 했습니다. 

그네들을 도우려 했습니다. 그네들의 괴로움을 씻어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듣지 못했습니다.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들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네들은 끊임없이 이렇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 몸이 나야. 이 몸의 생김새가 나야. 나는 남자야. 나는 여자야. 이게 나야. 나의 생각이 나야. 나의 믿음이 나야. 나의 습관이 나야. 나의 가치관이 나야. 나의 직업이 나야. 나의 지위가 나야. 

그 어떠한 것도 그네들이 아니지만, 그네들은 끊임없이 저렇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고작 수십년의 수명을 지닌채 살다가 난데없이 흙으로 돌아가 버릴 그 육신을, 자기라 여기며 불행해 했습니다. 울부짖곤 했습니다. 이렇게 외치곤 했습니다. 

나는 불행해! 나는 괴로워! 나는 무서워! 죽을것만 같단말야!


그 청년은 비로소 완전한 확신에 도달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이 깊디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한, 불행을 피할 수 없다는 완전한 확신에 도달했습니다. 그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저 의문에 답을 찾는 자만이 삶의 불행과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 청년은 오늘도 저 깊디깊은 수렁에서 빛을 찾아 헤매이고 있습니다. 

그 청년은 여러분들께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 합니다. 

몸 때문에 괴로우십니까? 그 몸이 자기인지를 살펴보세요.
생김새 때문에 괴로우십니까? 그 생김새가 자기인지를 살펴보세요.
능력 때문에 괴로우십니까? 그 능력이 무엇인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인지를 살펴보세요.
살펴보세요. 그리고 살펴보세요. 또 살펴보세요. 

여러분들이 보는 TV, 여러분들이 보는 영화, 여러분들이 듣는 음악.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을 여러분들의 괴로움과 불행에서 벗어나게 해주진 못합니다. 
살펴보세요.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바로 그 자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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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잘 읽고 또 한번 더 생각해보고 물러
    갑니다~~

    • 건방진 글, 송구하네요. ^^

      조금있다 한번 들르겠습니다.

      무비조이님 이웃 추가 한다는 걸 자꾸 까먹는군요.

      부족한 글에 댓글, 감사드립니다. :)

  3. 안녕하세요.
    사실 요즘같은 시대에서
    외모는 정말 중요한 요소 같아요.
    하지만 쉽게 바꿀 수 없으니 답답할 수도 있겠죠.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생도 성형을 생각한다고 합디다.

    기가 막힌 노릇이죠.

    주말 잘 보내세요.

    참...글 발행했어요..드디어..ㅎㅎ

    • 외모의 중요성... 그렇군요.

      어쩌면 끝나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ㅠㅠ

      하얀비님도 좋은 주말 보내시고, 건필하세요. :)

  4. 정말 외모지상주의의 여실한 문제점인듯하네요....

  5. 이거 왠지 님 이야기인 것만 같은데... 아닌가요?? ㅎㅎ 그냥 예를 드신 거라면... 그나저나 얼렁 배탈이 나으셔야 할 텐데요 ㅠ 그거 진짜 보통 괴로운 게 아니잖아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ㅎ

    • 정로환의 효능을 조금 보고 있습니다. 역시 야행성인지라 해가 지니 궁디숭이 돌아오는군요. 궁디숭이란 말 알아요? ^^

      그리고 글은 제가 원래 쓰고자 하는 글과 좀 유사한 방식의 글이에요. 문제는 사람들이 그닥 뭐... ㅎㅎ

      배탈이 일년에 두번이라.. 어쩌면 덩.... 치.... 가.. 험험!

      좋은 주말 보내시길... :)

    • 덩... 치... 가 다음에 말을 정말 듣고 싶군요-_-+++ ㅎㅎ 근데 궁디숭이 뭐예요??+ㅁ+ ㅎ

    • 그 다음 말은 잊었습니다. --;

      원래 경상도 말로 궁디는 엉덩이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숭은 '흉'을 의미하죠. 합치면 엉덩이 흉터란 뜻인데, 이 말을 빠르게 소리내면 '컨디션'과 비슷합니다.

      제 친구 녀석이 고등학교 때 만들어낸 말인데, 어찌나 웃었던지... :)

      그래서 간혹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궁디숭이 안 좋아!라곤 하죠. 경상도 사람에겐 엉덩이 흉터가 안 좋아!로 들린답니다.

      경상도 언어의 미학이죠... ^^

    • 우와, 재미있는 말이네요 ㅎㅎ 글고보니 저희 엄마두 경상도 분이라서 가끔 사투리를 들었던 기억이... ㅋㅋㅋ

    • 어머님께 한번 말씀 드려 보세요. ^^

  6. 왠지 이 포스팅은 아저씨들의 사랑을 불러모을 것 같다는 느낌이... ^^;
    정로환과 매실청 드셔서 빨리 나으세요 ~ ^^

    • 아저씨들의 사랑이라... 한번 받아보고 싶군요. ^^

      정로환을 먹었더니 많이 좋아졌어요. ^^

      좋은 주말 맞으시고, 주말에 다음 메인에서 뵙지요. 화이팅!:)

  7. 아..찡..하네요..
    왠지 남 예기만은 아닌듯 하네요...
    저도 외모때문에 요새 고민을 많이 하니..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 음... 정 안되시겠거든, 그냥 기다려 보시라 충고를 드리고 싶지만, 자칫 건방지게 들릴 수 있겠군요.

      저 같은 경우, 때가 되니 많은 것이 저절로 풀려 버린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고민이든 무엇이든지요...

      좋은 댓글 감사드리고요, 즐거운 주말 맞으시길 바랍니다. ^^

  8. 외모가 중시되는 사회이다보니 불행해지는 사람들이 더 많은 듯 합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가 외모에만 신경을 쓰니...
    행복한 주말 되세요.

    • 예, 좋은 말씀이세요. ^^

      좋은 밤 보내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래요. :)

  9. 안녕하세요^^ 우연히 이리니님 블로그에 들어왔다가...무슨글이였더라..?ㅎ 암튼 며칠전에 새벽3시까지 블로그 탐방을 했었는데 ㅎㅎ
    원래 리플같은거 귀찮아서 잘 안다는데, 그냥 웬지 오늘은 인사도 드리고 나란 놈이 그동안 몰래 블로그 훔쳐보고 있었다는걸 드러내고 싶어서...리플까지 달아봅니다. 반겨주면 자주 달아버릇 하니깐 반겨주지 마세요 ㅎ
    글 많이 공감이 가네요. 제가 사춘기무렵도 저런 쓰잘데기없는(당시엔 매우 심각했지만) 생각과 번뇌가 폭발하듯이 터져나오던 시기가 있었죠.
    그 무렵 저도 이리니님과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니, 전 아직까지도 자아에 대해서 완벽한 해답을 내리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했군요 ㅎㅎ
    하아... 마음속에 비뚤어진 응어리를 아직 다 털어내지 못한것 같아 우울해지네요

    • 반갑습니다. 한량님. ^^

      제 블로그를 계속 봐왔다?

      제가 그 당시 언급했던 그 분은 분명 아니시군요. 그 분은 글을 조리있게 잘 쓰시지 못했습니다. --;

      아마도 저랑 비슷한 단계를 거치지 않았나 싶네요. 생각과 번뇌가 터져나오는 시기. 저는 그걸 지금은 쓸데없다 보진 않지만, 그 당시는 참 괴롭긴 하더군요.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단계가 있었기에 지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그 시기를 고맙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량님은 참으로 반갑게도 '자아'를 언급하셨네요. 그런 분들은 참 보기가 드물죠. 아니면 드러내지 않으시거나요. 주위에서 이상하게 보니까요. :) 뭐 어쩌면 저의 이 글도 약간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글이죠. --;

      건방진 글을 잠깐만 쓰자면,
      저는 현재 '자아 앎'이라는 것이 애초에 없었을지 모른다 여기고 있습니다. '자아'란 것 자체가 원래 없다면 그에 대한 앎 자체가 있을 수 없으니까요... 음...이거 어디까지나 저의 짧은 소견일 뿐이에요.


      음.. 확실히 쓰고 보니, 시건방지기 짝이 없군요. --;

      마지막으로 저는 한량님 같은 분과의 대화를 아주 즐길 가능성이 많습니다. 뭔가 고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항상 다른 이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뭔가를 가지고 있게 마련이죠.

      만약 님이 사이비, 오컬트, 특정 종교에 지나치게 빠져있지 않다면 '자아'를 비롯한 각종 주제에 대한 대화를 얼마든지 할 용의가 있습니다.

      다만 상당 시간을 글을 구상하고 쓰는데 소모하는터라 즉답을 드린다는 보장은 드릴 수가 없네요. ^^

      단, 제가 답글을 달 수 있는 한, 달아 보겠습니다.

      솔직히 이 글 써 놓고도, 관심 주는 사람이 없어 묻힐거라 생각했는데, 한량님도 그렇고 아래 Inrre님도 그렇고 두 분이나.. 솔직히 조금 놀랐답니다. 그리고 조금 기쁘군요.

      좋은 밤 보내시고, 행복한 주말 맞으시길... ^^

    • "자아의 앎 자체가 없을 수도 있다.."라는말 세번 정도 읽으니 무슨말인지 저 나름대로 이해가 갈듯 합니다...ㅎㅎ 한번 시도해 볼 가치가 있을것 같아요.

      끊임없이 자아를 좇는것이 어쩌면 뜬구름 잡느라 허우적대는 짓일지도 모르겠군요.

      '나'가 죽어야 진정한 '나'를 보게(알게) 된다....

      옛 성현들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닮아살려고 시도해본적은 있으나, 인간은 그저 평범한 인간답게 사는것도 일종의 축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붓다는 일단 이 '깨달음' 즉, 진정한 자아 앎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된 이는 그 어떠한 것에도 만족을 못하게 된다고 하셨죠. ^^ <---이말 공감하거든요ㅎㅎ.
      또한 살아가면서 항상 뭐든지 현실과 타협하는게 가장 힘든일이니까요.


      그리고 전 아직도 그놈을 찾지 못해 괴로움이 다 가시지 않았답니다..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여지껏 조각하고 닦아놓은 "나"와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 내가 추구하는 모습의 "나"의 모습이 각기 다르다면 그 괴리로 인해 내면적 충돌이 일어나고 그 충격은 사람에 따라서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고 봐요.
      이리니님은 이런 충격을 겪어보신 적이 있나요?

      끊임없이 관찰하라...잘 새겨듣겠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참 제가 배워갈게 많네요^^

      잠에 취해서 횡설수설 했네요..ㅎㅎ 요즘 한동안 책을 멀리했더니 글솜씨도 엉망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와의 대화를 즐겨 주신다면 저도 가끔 놀러와서 별 의미없는 댓글로 귀찮게 해드리겠습니다
      '다른 이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뭔가'를 저도 한두개쯤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죠ㅎㅎ

      참...그리고 전 제입으로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ㅎㅎ
      기독교인입니다요 사이비는 살짝 혐오합니다

      그리고 너무 오랜시간 구상과 쓰기에 몰두하다보면 또 무언가에 소홀해 질 수 있으니, 자알 조율하시길 바라는 바입니다

    • 제일 마지막 말씀이 일단 인상 깊네요. 제 개인적 성향에서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이죠. 한 곳에 빠져 균형을 잃어버리는... 그나마 지금은 나이가 좀 있어서 편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멀티태스킹은 잘 안되는군요. 균형감각이 있는 이들은 이걸 참 잘하더군요. 예를들면, 사회생활, 취미생활의 균형 같은거 말입니다. 여전히 안되는군요. 욕심 때문이겠죠. ^^

      끊임없이 관찰하라... 는 어쩌면 한량님께는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군요. ^^ 어떤 한 현자는 명상조차 일정 수준을 넘어간 이에게는 방해다라고 충고하더군요. 주시는 마음을, 마음은 다시 자아를 강하게 한다는건데, 한량님은 이해하시리라 봐요.

      한량님의 연세가 어찌되시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님이 초조함, 조급함 속에 있다면, 그런데 연세가 30대 중반을 넘지 않으셨다면, 때를 기다리시는 것도 괜찮을지 모른다라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 왜인진 모르겠지만, 30 중반을 넘어서면 어떤 균형상태가 찾아오는듯 해요. 물론 이게 나이랑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현자의 깨달음이 일어난 나이의 평균을 내면 37세가 나온다고 하더군요. 붓다도 30대, 예수님도 30대. 아마 뭔가 있지 싶어요. 뭔지는 모르죠. --;

      그리고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한 생각. 저 역시도 해 본적이 있어요. 특히 조급함이 지배적일 때. 어둠 속에 갇혔다는 느낌일 때. 그냥 폄범함 속에 있는게 더 낫겠다는 생각...

      하지만 현자들은 운명을 부정할 땐 하시지만, 어떤 땐 운명의 힘을 강하게 강조하시기도 하죠. 저는 특정 의식들은 여기를 목표로 향해 간다고 믿고 있어요. 목적지에 다와 가는거죠. 이 상태에서 평범함으로의 회귀는 자칫 자연스런 과정을 뒤틀 수 있다 믿고 있어요. 물론 인간의 얄팍한 의지로 역행하려고 해도 되지는 않겠습니다만, 자연스런 흐름을 역행하려 몸부림 칠 때의 고통은 고스란히 인간, 그 자아가 받으니까요...

      그리고 님이 말씀하신 충격. 예, 님과 같진 않겠지만 경험을 한적이 있다고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그 충격 속에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예전과는 다른 약간의 균형이 생겨나 있죠.

      한량님 말씀대로 그 충격은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목숨을 끊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그 충격에서 더 나아가면 소위 말하는 그 '바닥'에 도달하게 될지도 몰라요. '나'를 거머 쥐어보겠다고, 그 '나'를 발견해 보겠다고, 그 '나'를 지켜보겠다고 발버둥치고 또 치다 안될 때, 바닥이 드러나죠. 심대한 충격이 올 수 있고, 절망의 끝자락, 어둠의 최종판처럼 보일 수 있다 들었습니다.

      익히 알려져 있는 영혼의 깊고 어두운 밤의 최종 갈림길, 그 최후의 문을 만난다 들었습니다. 어떤 분은 '마음(자아)가 건너갈 수 없는 심연의 강'이라 묘사하시더군요. 거기를 건너가면 한량님이 원하시는 그걸 얻게 되시겠죠. 하지만 거기에 한량님이 원하시는 한량님의 '나'는 없을 겁니다. 그게 있을 경우, 강을 건너갈 수 없고, 그 문을 열 수 없으니까요. 거기서 '나'이면서도 '나'가 아닌 것, '신'이면서도 '나'인 것이 드러나며 '나'를 대신한다 들었습니다. 한량님의 영혼의 여행은 끝난것이고, 회귀한 것이며, 상대계로 나아갔던 탕아는 비로소 귀향한 것이죠.

      아! 이거 모두 줏어 들은 겁니다. --;


      마지막으로 제가 한량님의 길에 뭔가 간섭을 하려는 의지는 전혀 없습니다. 이건 그냥 저의 좁은 소견과 줏어들은 그 무언가 일 뿐이죠.

      간만에 대화가 통하는 상대를 만난듯해서 비록 필담이지만, 즐거웠습니다. ^^

      님 역시도 저와의 대화 때문에 다른 무언가에 소홀함이 없이, 자신의 균형을 잃는 일 없이, 잘 조율하시길 바랍니다. :)

  10. 내 몸이니까 그냥 당연히 난줄알았는데 그것도 또 아니네요
    나 자신을 알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자기를 찾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에요?

    • 성현들은 이렇게 충고들을 하세요.

      '나'가 죽어야 진정한 '나'를 보게(알게) 된다.

      앞의 나는 보통 사람의 자아(소아 또는 에고)를 의미하고, 뒤의 나는 '참나', '진아', '큰 나', '진짜 나'라고 불려지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에고(자아)의 죽음은 마치 보통 사람에겐 '죽음'처럼 보인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 단계를 넘어간 인간은 그 수가 그렇게 많지 않다고 알려져 있어요. 대표적인 인물이 붓다, 예수님이고, 세상에 알려져 있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성자, 스승, 현자들의 일부도 그렇다고 알려져 있어요.

      님이 언급하신 '자아 앎'은 소위 말하는 '깨달음'을 의미합니다. 솔직히 제가 뭐라고 할 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죠.

      붓다는 일단 이 '깨달음' 즉, 진정한 자아 앎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된 이는 그 어떠한 것에도 만족을 못하게 된다고 하셨죠. ^^

      Inrre님은 이쪽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

      좋은 주말 보내세요. ^^

  11. 이리님 멋진 글 잘 보았습니다.
    역시 이리니님 글 잘 쓰시네요.^^
    책을 참 많이 읽으신듯..

    마지막 문구 멋저요.^^

    • 책을 보면 기절을 하는데, 책은 무슨... --;;

      좋은 주말 보내시길... :)

  12. 술술 읽으려고 마음먹고 읽은 글이지만, 한번 읽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13. 아주 멋진 글이었습니다. 글이란 건 역시 잘쓰고 못쓰고를 떠나 가장 의미가 있는 것은 '주제'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볼 때, 이글은 노벨문학상감이네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가진 얼굴을 진짜 자기자신으로 생각하지않고, 자신이 입는 옷으로 생각을 못하니깐요. 하지만 이 글을 쓰신 주인장(?)께서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시는 분이시겠죠?

  14. 으앗. 엄청난 오타를 썼군요. 다시 정정 하겠습니다. 3문장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가진 얼굴을 자기 인식의 주체로서 보지, 자신이 입는 옷으로 생각하지는 못하니깐요."로.

  15. 비밀댓글입니다

    • 허허.. 이것 참... 블로깅을 하다보니 이런 댓글도 받아 보는군요. ^^

      arepos님의 말씀이 어느정도는 맞습니다. 그 작은 불빛을 따라 소수의 옹고집 바보들이 걷는 길을 추구하고 있는 것도 어느정도 맞다고 말씀드려야 겠군요.

      하지만 이 길도, 너무나 다양하게 여러 갈래 갈라져 있으니, '님이 짐작하시는 바로 그 길이다'라고 단정해서 말씀드리지는 못하겠군요. :)

      님의 길에도 그것이, 님의 내면에 있는 그것에도 인사를 드립니다. ^^

  16. 내면을 강하게 하니 않으면 결국 외모에 치중하게 됩니다.
    특별히 화상을 입은게 아니라면...

  17. 단순히 외모때문은 아닌 것 같아요. 돈, 권력, 명성. 이런것들이 연결되어 있잖아요. 얼굴이 밥먹여주는 시대이니까.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쁘다 여기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사랑받기 위한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가 아닐까. 물론 사람마다 미의 기준이 다르지만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면 사랑받을 확률이 높아지니까요. 아름다워손해볼 것은 없다는게 저의 생각. 저 소년이 연약한 육체도 나의 거룩한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 진짜 나는 누구인가를 찾기위해서 자기안으로 숨지 않고 세상과, 사람들과 부딪혀서 찾아내길. 우리모두 자기답게 더불어사는 지혜를 !

  18. 음...본문도 좋고 댓글도 좋네요. 뭔가 생각하게 한다능...
    저도 30대인데...이제 슬슬 조율이 될까요...^^?

  19. 저는 깨달음을 얻으면 오히러 모든것에 무감각해지고 모든것에 만족하며 초월할수있다고 생각해요 이리님이 말하신 붓다가 어떠한것도 만족을 못한다고하셧는데 저는 어떠한것도 만족을못할때 욕망에서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는다고생각해요

  20. 힘들었겟네요..음.문제를 바라볼땐 단순하게 정리하고 해결은 다각도로 하는게 필요하죠.사람들이 날 안좋게 바라본다.그러나 난 내 시각을 바꾼다.이것은 하나의 방법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맞지않고 또 정답도 아닙니다.어떤 사람은 내면보단 주변의 인정이 더 필요한 성격도 있다고 합니다.그런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내면을 들여다보며 자신에게 만족하기가 힘들어요제가 심리학에 관심있어서 공부를 좀 햇는데.-나에게 무언가 놓친게 있어..-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돌아보는것은 에니어그램 성격유형으로 볼때 4번유형의 행동이네요..저도 4번유형이라 이런식으로 문제를 바라보곤 혼자 내 시각을 바꾸고 내면의 빛을 따라가고.그런데..사실 4번유형은 내면엔 적극적이지만 소극적인 유형이라 주변과 소통을 잘 못할때가 많아서 그런점을음..모든 사람이 다 다른 성격이기에 이 분의 조언대로 그대로 한다고 효과가 있진않습니다..남자들은 여자같다는 놀림때문에 열등감보단 자신의 정체성자체가 흔들릴수도 있고여자들은 남자같다는 말은 잘 안듣지만 항상 비교당하기때문에 열등감이 많죠.대부분의 여성들은 그래서 비교하고 질투하고.남자들은마초같아지려고 그래서 남자답다는 말을 들으려합니다.정작 여자들은 그런 남자안좋아하는데.이건 사실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사회전체.그리고 특히 미디어가 바뀌어야합니다.특히 개콘에서 김민경이라는 뚱뚱한 여자분놓고 외모비하개그하는 그런 코너를 버젓이 만들고 방송하는 것을 보면 아직 멀었죠..하옇튼 지금으로선 최선의 방책은 시민들.여성민우회에서 하는 외모차별을 없애는 프로젝트등 사회운동을 하거나 본인이 내 외모의 단점을 외려 살려보는등.-예로 이효리는 긴허리나 납작한 엉덩이 눈주름을 보톡스맞았다가 이젠 안한다고 하죠,그런 자신감이 생기는것은 본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주변에서 넌 못생겨도 이런점은 섹시하다는 장점을 찾아주는게 먼저일수도 잇어요.비나 김태우.김종국이 엄청 인기있찌만 눈은 작아서 기획사사장들이 다 성형고민했다고 하잖아요.이렇게 사람들눈이 제각기 다르다는것을 알려줄필요도..

  21. 죽어야된다이건가요? 자기자신을 찾는다는 말이 뭐죠? 저는 이해할수가 없네요
    외모때문에 너무 스트레스 받는데 이글을 읽어도 도움이 되지않네요 너무 힘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