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니 습작/이리니의 사연

몸 불편한 버스보다 택시가 불쾌한 이유

이리니 2009. 6. 9. 09:17

 지방에 있는 모 대학교 정문 앞. 글쓴이가 특히 사랑했던 장소다. 예전 주말에 버스를 타고 일을 보러 갈 때마다 꼭 거쳐야만 했던 장소. 대학교 앞이다 보니 좋은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첫째는 그곳이 버스 종점이었다는 점. 보통 순식간에 왔다, 눈 깜짝할 새에 가버리는 버스를 놓칠새라 눈에 잔뜩 힘을 주고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가 없었다. 오는 버스마다 최소 5분 이상을 머물렀으니까. 둘째? 한국땅에서 자판기 커피가 가장 싼 곳은 고기집 안에 있는 자판기고, 두번째로 싼 곳이 대학교 내 자판기다. 150원. 지금은 올랐으려나? 평소 커피를 물처럼 마시는지라 동전 2개를 넣고 원없이 커피를 즐길 수 있었다. 셋째? 탁 트인 공터가 눈 앞에 펼쳐져 있어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여 지쳐버린 심신을 쉬게 하기에는 더없이 안성맞춤. 정문 앞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부담없는 커피를 홀짝이며 망중한과 고즈넉함을 즐길 때면 이유없는 삶의 여유와 느긋함을 경험하곤 했다. 그러다 간혹 아름다운 자태의 여대생이라도 보게 되면 '이런 것이 무소유의 행복이로다!'라는 감탄이 속에서 우러나오곤 했다.

 그 날도 커피를 홀짝이며 간만에 찾아온 삶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갑작스레 터져나온 고성이 그것을 부셔 버리기 전까지...

이해가 안돼! 버스비나 택시비나 차이가 나봤자 얼마나 난다고! 왜 저토록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굳이 버스를 타려고 하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어!
 
 그 고성이 터져나온 곳은 다름 아닌 택시 기사분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곳. 간만에 되찾은 여유를 산산조각 내버린 그 인간이 미웠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영 영터리는 아니잖은가? 거리가 멀다면 당연히 택시는 부담스럽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여태껏 살면서 택시 기본료가 나올 정도의 거리조차 습관적으로 버스를 타고 다녔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몇 백원 아낄려고? 이 말도 맞다. 하지만 뭔가가 더 있었다. 고작 몇 백원만 더 내면 빠르고 정확하게 목적지로 갈 수 있는 택시를 버려두고 굳이 몇 십분을 기다려 버스를 타려고 했던 이유. 

 오늘 이 글은 바로 여기에 대해서다.


 모두가 다 아는 버스의 불편함  

 

 사실 이 부분은 글로 적을 필요가 없는 부분이다. 왜? 누구나 다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출퇴근, 등하교 시간 때의 만원 버스. 가히 지옥이 따로 없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치이는 것은 물론, 옆에 뒤에 서 있는 이 인간들은 도대체 뭘 쳐먹었기에 이토록 고약한 냄새를 풍긴단 말인가? 온갖 인간군상들이 한꺼번에 뒤섞인 혼란의 상황, '찬스!'를 외치며 젊은 아낙들의 몸을 이곳저곳 더듬어대는 썩을 넘들, '대박!'을 외치며 다른 이들의 지갑을 탐하는 쥐새끼 같은 넘들에 이르기까지...

 반면에 택시는 이런 상황 자체가 생기기가 힘들다. 만원 택시? 들어본 적도 직접 본 적도 없다. 정원 자체가 기사 빼면 고작 4명만 탈 수 있는게 택시다. 심지어 정원을 모두 채워 5명이 빼곡히 타고 있는 택시 자체를 보기가 쉽지 않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택시는 불편하다. 아니 때때로 버스보다 더 불쾌하다. 왜일까?



 뭐니 뭐니 해도 머니!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돈'이다.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많은 이들이 굳이 버스를 고집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다. 버스는 정해진 버스비만 내면 거리에도 시간에도 상관이 없다. 버스에 오를 때, 버스비를 낸 후로 돈에 대해서 만큼은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미 냈으니까. 이미 계산을 끝마쳤으니까...

 택시의 경우? 이 땅에 있는 많은 이들 중, 택시를 잡아 타고 '김기사~ 운전해~'를 노래하며 느긋하게 목적지까지의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택시비는 거리에 비례해서, 시간에 비례해서 끊임없이 커져만 간다. 조금만 장거리를 타도, 길이 조금만 막혀도 소위 말하는 우리네 '서민'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될 정도의 큰 액수를 지불해야 한다. 이것이 택시가 불편한 가장 큰 이유, 우리네 서민들이 굳이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버스를 타려하는 가장 큰 이유인 것이다. 얼마전 또다시 이 '택시비'의 인상이 있었다. 서민들은 이제 택시 타기가 더욱 불편하고 무서워져 버렸다. 

 그렇다면 이것이 전부일까? 


 지상 최강의 천리마  

 

 수 없이 많은 말들이 역사상에 당당히 그 위대한 이름을  남기고 있다. 그 유명한 천리마에서부터 핏빛 땀을 흘린다는 한혈마에 이르기까지. 또 듣자하니 혈통 좋은 경주마는 그 몸값이 10억을 너끈히 넘어간단다. 하지만 그 누가 알았으랴... 이 모든 말들은 발뒤꿈치조차 따라가지 못하는 희대의 천리마가 있을줄은... 이 말은 지치지 않는다. 항상 달린다. 끊임없이 달린다. 엄청난 속도로 달린다. 



 바로 택시에 달린 미터기 안에서만 달리는 이름 없는 말이다. 
( 솔직히 요즘 택시기 미터기에도 이 천리마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택시를 타본지가 꽤 오래전이니까...)

 경제 위기. 언제쯤 이 말이 더 이상 들려오지 않게 될까? 글을 쓰는 이리니 역시 이 경제 위기에 따른 절박함과 두려움을 경험해 봤다. 갑자기 들이닥친 경제적 불행으로 온 가족이 고통 속에 있을 때다. 그 절박함에서 벗어나보려 무던히도 발버둥 치던 때. 아침에 놀라 잠에서 깨어보니 출근시간에 많이 늦었다. 택시를 타면 간신히 지각없이 닿을 것이요, 버스를 타면 무조건 지각을 할 상황. 부랴부랴 바깥으로 달려 나갔을 때다. 버젓이 지각을 할 것이 뻔한데도 이리니는 버스가 타고 싶었다. 왜? 지갑이 얇았으니까. 택시비가 부담스러웠으니까. 그 당시는 상황이 너무 심각해 자판기에서 뽑아먹는 300원짜리 커피조차 부담스러울 때다. 지갑에 있는 돈이라곤 고작 왕복 버스비와 담배값 정도. 그 택시비가 나와 봐야 사실 얼마나 나올까? 직장까지의 거리도 그다지 멀지 않아서 많이 나와봐야 삼천원 정도가 나올거다. 그런데도 택시 타기를 망설였던거다. 그것보다 더 이리니를 괴롭혔던 것은 그 몇천원이 부담스러운 그 상황 바로 안에 나 자신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너무나도 비참했다. 그래서 싫고 미웠다. 

 결단을 내렸다. 지각을 해서 별 같잖지도 않은 직장 상사에게 하루종일 갈굼을 당하며 지옥같은 하루를 보내느니 차라리 없는 돈에 택시비를 내고, 밥을 굶던지 담배를 끊던지 하자고 생각했다. 결단과 동시에 잡아 탄 택시. 뭐가 가장 크게 보였을까? 맞다. 

 바로 그 말이다. 천리마. 지치지 않고 달리는 말. 택시는 서 있어도 이 녀석은 잠시도 쉬지 않고 달렸다. 이 녀석이 들고 뛸 때마다 어김없이 올라가는 미터기의 숫자들. 찰칵찰칵. 디지털이라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당시 이리니의 마음 속엔 천둥보다 크게 들리는듯 했다. 다가닥 다가닥. 찰칵찰칵. 콩알만한 동네에 무슨 신호등은 그렇게도 많은건가? 그 작은 동네에 무슨 차는 또 그렇게도 많은건가? 가다 서고, 가다 서고. 신호 받고 서고, 차에 밀려 서고. 그럼에도 이 말이라는 녀석은 잠시도 쉬지 않고 달렸다. 

 집안에 우환이 닥치면 가장 먼저 생기는 병이 있다. 뭘까? 바로 불면증이다. 위기감과 절박함은 걱정 근심을 낳고, 이 걱정 근심은 끊임없는 염려와 생각을 나으며 사람을 편히 쉬게, 곤히 자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불면증으로 뒤척이다 뒤늦게 들어버린 잠. 충분할리 만무하다. 아침부터 몸은 이미 천근만근. 머리와 마음 속은 걱정 근심과 어우러진 온갖 스트레스로 이미 뒤죽박죽이 되어 있는 상황. 이제는 이 말마저도 이리니를 괴롭혔다. 아침에 부랴부랴 놀라 뛰었기 때문일까? 온 몸에 식은땀마저 조금씩 베어나왔다. 한마디로 심신의 컨디션이 최악이었던거다. 그래서 였을까?

 그 들고 뛰는 말을 보고, 그 옆에서 끊임없이 요동치는 미터기의 숫자를 보고 있자니, 갑작스레 가슴이 조금씩 죄여오고 있었다. 연일 이어진 직장에서의 긴장된 생활, 집에서조차 편히 쉬지 못해 가슴 졸이며 살길 여러 달째. 그 모든게 어우러져 이런 일을 빚어내는 것일까? 가슴 조임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이윽고 가슴 왼쪽에서 쿵쾅거리던 심장박동 소리가 귀에 들리는듯 하더니, 심장에서마저 아리한 통증이 올라오고 있었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가슴을 옥죄여 오는 두려움, 위기감 그리고 공포. 여러가지 불행한 상황이 중첩, 또 중첩되어 당시의 이리니는 책이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그 가슴 옥죄는 두려움과 위기감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그것도 고작 택시비 삼천원 때문에...

 너무 심하지 않냐고? 글쓴이는 지금 이 순간도 이런 분들이 분명히 계시리라 믿고 있다. 누구에게는 아이들 용돈에 불과한 적은 금액의 돈이, 누구에게는 두려움과 위기감 그리고 공포마저 주고 있을지 모른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면서도 망설이는 이들. 점심시간에 동료와 나간 식사자리, 식당 메뉴에 걸려있는 5000원이라는 가격표가 부담스러운 이들. 급해서 택시를 잡아탔지만, 그 끊임없이 올라는 미터기의 숫자에 가슴 졸이는 이들.

 없을것 같은가? 


 눈 뜬놈 코베가는 세상  

 

 아주 예전 급한 연락을 받고 병원을 가야 하는 불행한 상황이 생겼을 때다. 이런 상황, 대충 짐작하시리라 믿는다. 워낙 마음이 급하니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작정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최대한 빨리 가줄 것을 부탁드렸다. 당시 이리니가 있던 곳은, 서울 인근의 신도시. 도로는 시원하게 뚫려있고, 아직 인구는 적어 그 큰 도로를 마치 뻥뚫린 고속도로 달리듯 달릴 수 있었을 때다. 한데 이 택시기사가 참 요상한 사람이었다. 그 큰 길을 다 놔두고 이상하게 샛길로 접어들더니, 도무지 택시가 달릴 생각을 않는거다. 가다 사람에 막혀 서고, 가다 리어카에 막혀 서고, 또 다른 차에 막혀, 가고 서고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분명히 얘기를 했다. 급한 일이 생겨 병원을 가야하니 최대한 빨리 좀 가달라고, 서둘러서 가달라고. 그런데 이 괴상한 기사 양반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려가며 그 꽉막힌 지체 상태를 즐기고 있었다. 그 지역에 산지 여러달이 넘었지만 단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외지디 외진 곳을 여러군데 구경해야만 했다. 버스를 타고 가도 30-4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택시를 타고 30분이 넘어가는데도 목적지는 커녕, 자신이 도대체 어디쯤에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 택시 기사의 콧노래는 멈출 줄을 몰랐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한마디했다. 

아저씨, 지금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저 이 지역 사는 사람이에요. 여기 지리 잘 알아요. 근데 도대체 왜 큰 길 다 놔두고 이 길로 가는겁니까?
   
 기사의 흥얼거리던 콧노래가 멈추고, 택시 안에는 싸늘한 정적이 찾아왔다. 기사의 얼굴에는 온통 불쾌하다는 표정, 조금전만 해도 지나치게 느긋하기 그지 없었던 그의 운전은 어느새 난폭 운전, 짜증 운전으로 돌변했다. 그냥돌려도 될 핸들을 '확' 돌리기 시작했고, 끊임없이 경적을 울려대며 '나 화났어! 나 짜증났어!'를 보란듯이 과시했다. 

 뒤늦게 병원에 도착했을 때, 어떻게 해야만 했을까? 생각지도 못했던 큰 금액의 돈을 낸 후, 보란듯이 택시 문을 '쾅!'하고 닫아 버리는 것. 이게 이리니가 할 수 있었던 전부였다. 

 기사 옆 조수석에 버젓이 눈을 뜨고 있었음에도, 그 기사는 이리니의 코를 베어갔다. 


 밤 길보다 더 무서운 택시  

 

 이 부분 역시 글로 쓸 필요가 없다. 여자분들은 이미 몸소 너무나 잘 알고 계실 것이다. 무슨 놈의 세상이 남자가 여자를 택시에 태워 보내며 그 복잡한 택시 번호판을 외우는 것이 남자의 의무, 매너가 되었단 말인가? 왜 택시 뒤를 돌아가 휴대폰으로, 디카로 그 택시 번호판을 사진으로 찍지 않으면 안되게 됐는가?

 연일 뉴스에 보도되는 택시와 관련된 범죄들. 그걸 들을 수 밖에 없는 우리... 무서울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예전에는 과년한 나이의 딸이 밤 길을 걸어온다면 걱정해야만 했다. 이제는 딸이 '아빠, 엄마. 저 택시타고 집에 가는 중이에요...'라고 해도 걱정을 해야만 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마무리  

 

 또 쓰고 보니 황당할 정도로 긴 글이 되어 버렸다. 이런 것도 병인걸까? --;
여기까지 이 긴 글을 읽어오신 분이라면 저 위쪽 글이 다시 가물가물 하실 수 있다. 그러니 정리를 한번 해보자. 


버스가 불편한 이유

1. 시간적 부담 -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버스를 타도 상대적으로 느리다.
2. 날씨가 덥거나, 추울 때 이 버스 기다림의 시간은 아주 고통스럽다.
3. 만원 버스의 고단함 - 두 말할 필요가 없다.
4. 난폭 운전
 더 있겠지만 너무나도 잘 아시는 사실이니 이 정도로 간단히 하자.
  

택시가 불편, 그 불편을 넘어 불쾌한 이유

1. 금전적 부담감
2. 택시 기사의 비양심
3. 안전에 대한 위협
 역시 택시를 타보지 않으신 분들은 없으실테니 간단히.

 여러분들은 이 두가지 사실을 비교해 보고 뭔가 하나 깨달으신 것이 없는가? 이리니에게는 하나가 있다. 

  • 버스는 주로 사람의 몸을 불편하게 한다.
  • 그에 반해, 택시는 몸은 편하지만 사람의 마음불편, 때때로 불쾌하게 한다. 

 어떤가? 조금 일리가 있는가?

 얼마전 또 다시 택시비 인상이 있었다. 그간 뉴스를 통해 '서민의 발'이라 불리는 버스, 택시와 관련된 이런저런 개선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나름 열심히 노력해 오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익히 짐작하는 바다. 

 글쓴이는 이런 제안을 한번 드려보고 싶다.
특히 택시의 경우, 제도적 개선, 시스템의 개선, 택시 기사분들의 반듯한 옷차림의 개선 이전에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고 믿고 있다. 

바로 그 사람의 마음을 불편, 불쾌하게 만드는 요소의 제거 및 개선.

 이것이 우선 되어야 하지 않을까? 
 택시비를 인상해서 적자폭, 손해를 메우려 하지 말고, 이런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문제점을 개선해 나간다면, 택시를 이용하는 승객들은 자연스레 늘어날 것이고, 그에 따라 손해, 적자날 일은 적어지지 않을까?
 만약 이 근본적인 문제를 그대로 방치한 채,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길만을 끄고자 택시비 인상만 지속해 나간다면, 점점 택시를 이용하는 승객들은 줄어들 것이고, 그에 따라 손해, 적자가 생길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럼 또 택시비 인상, 또 인상이라는 헤어나올 수 없는 무덤을 스스로 파게 되는 것은 아닐까?

겉으로 들어난 외형적 모습, 그 제도와 시스템의 개선은 어쩌면 수박의 겉만 핥는 헛된 짓인지도 모른다. 

 그 수박의 속을 노려보자.
즉 승객들, 그 사람들, 인간들의 마음을 편케하는 일. 이것이 핵심임을 꿰뚫어 보자. 
현인들의 말씀에 세상 만사를 지어내는 것은 인간의 마음. 이 마음만 편케 된다면, 어쩌면 만사가 형통하게 될지 그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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