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니 습작/환상 깨기

"외모 콤플렉스" 한 아이는 이렇게 넘었다.

이리니 2009. 5. 15. 14:22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약한 몸에 소심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였습니다. 홀로 어둠 속에 들어가 자신의 병약한 몸, 소심한 마음을 한탄하며 눈물 흘리던 아이였습니다.

다행이 큰 탈 없이 자라난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어딜가도 자기 또래보다 작았던 이 아이는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세끼 네끼의 식사로도 모자라할  때, 이 아이는 하루 두 끼를 벅차하니 제대로 자랄수가 없었던 겁니다. 

문제는 중학교 2학년에 접어들며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사춘기를 거치며, 자아의 성장, 그 인간성의 꽃이 피어나는 시기를 맞이 했습니다. 이 아이의 마음 한 구석에 이런 생각이 갑작스레 나타나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저 아이들은 저렇게 큰데 나는 왜 이렇게 작을까? 남자인데도 나는 왜 이렇게 작을까?

등하교 만원 버스 속에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부대낄 때마다, 자기 또래 친구들의 겨드랑이에 끼어 간신히 몸을 지탱하느라 안간힘을 써야할 때마다 이 아이의 마음 속엔 저 생각이 나타나 무럭무럭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아이는 너무 어려 답을 얻어낼 수 없었습니다. 이 내면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힘이 없었습니다. 곧 이 아이의 마음 속엔 다른 어두운 생각들이 곁가지를 치며 무서운 속도로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못났지? 나는 왜 이렇게 능력이 없지? 나는 왜 이렇게 어리석지? ...
이 끝없는 내면의 문제는 자라고 자라, 종국엔 하나의 끔찍한 생각으로 자라나게 되었습니다.

난 못났어! 그래서 그 누구도 날 사랑하지 않아!

이 때부터 이 아이는 사랑받지 못한다는 그 끔찍한 느낌에 서서히 함몰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아이의 부모들은 그 끝없는 사랑으로 이 아이를 보듬어 안아줄 수 있었습니다. 다독여 줄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랑의 힘이었을까요? 아이는 자라남과 동시에 서서히, 서서히 자신의 내면에 있는 '자각의 빛'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자신의 내면에 비추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자그마한 자각의 빛은 이 아이의 내면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안에 뭔가 잘못된게 있어. 그래서 이렇게 괴로운거야. 이건 나 자신이 직접 고쳐야만 해!

이 때부터 이 자그마한 아이는 자각의 빛을 따라, 성장의 길, 성숙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갓 태동한 자각의 빛은 너무나도 미약하고 희미해서 때때로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에 따라 이 아이는 때때로 어리석은 선택, 잘못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열등감만큼은 확실하게 감지했던 이 아이는 하나의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키를 크게, 몸집을 크게 할 순 없지만, 다른건 달라!

이 아이는 부모를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메이커, 브랜드 의류와 신발로 치장해 달라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안타까웠던 부모는 기꺼이 이 아이의 조름을 너그러이 받아줬습니다. 

그렇게 온 몸을 브랜드 의류와 신발로 치장한 아이는 6개월의 시간동안 만큼은 허리와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걸어 다녔습니다. 자기가 친구보다 우등하다 믿으면서 당당히 걸었습니다. 그 괴로운 열등감은 사라졌다 믿었습니다. 하지만 6개월의 시간  후, 또 다시 자각의 빛이 한층 더 밝아진 상태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빛은 이렇게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관찰해. 자기를 더욱 자세히 관찰해. 자신을 더욱 세밀히 관찰해. 주위도 바라 봐. 보라구!

온 몸을 예쁘게 치장한 자그마한 한 아이는 주변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6개월의 시간동안 자신의 주변사람들이 자신을 끊임없이 쳐다볼거라 믿으며 으스대며 걸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네들은 그네들의 몫인 자신들의 삶을 살아내느라 너무도 바빠서 이 아이를 쳐다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 때, 다시 내면의 빛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모습은 가 아니야. 좋은 옷은 가 아니야. 좋은 신발은 가 아니야. 나는 누구지?

이 아이는 중학교 2학년, 그 어린 나이에 내면의 빛의 도움을 받아, 겉모습의 허구를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더욱더 깊은 수렁, 이 아이를 일평생 잡아가둘 거대한 수렁이 생겨 버렸음을 이 아이는 이 때 몰랐습니다. 

사춘기가 절정을 치달아 갈 무렵, 몸은 서서히지만 남성의 골격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이 무렵부터 이 아이는 예상치 못했던 말들을 주변으로부터 듣기 시작했습니다. 

남자 녀석이 그렇게 이뻐서 쓰겠어? 남자 맞아? 여자 아냐? 제비하면 잘 먹고 잘 살겠는데...

하지만 이미 이 아이는 그 외모의 허구와 거짓을 알고 있었습니다. 잘 생겼든, 못 생겼든, 크든, 작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 자각의 빛은 점점 밝아지며 이렇게 얘기했기 때문입니다. 

이 얼굴 네가 만들었니? 아니잖아. 이 몸 네가 만들었니? 아니잖아. 네가 남자이길 선택했니? 아니잖아. 그렇다면 넌 누구지?

이 때 이후로, 이 아이의 눈에는 모든 사람의 외모와 육체는 단지 그네들이 입고 있는 옷처럼 보였습니다. 그네들의 몸은 '그네들 자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네들의 생김새는 '그네들 자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네들도 모르게 입게 된 운명의 옷,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이 아이는 자신도 이미 그 운명의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 아이가 장성한 청년이 되었을 때, 그 자각의 빛은 찬란한 빛을 띄기 시작했습니다. 그 빛은 끊임없이 이 청년에게 속삭였습니다. 

이 몸이 너니? 
이 몸에 대해 넌 뭘 알지? 
이 몸이 너라면 넌 왜 이 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
이 몸이 너라면 넌 왜 이 몸을 원하는대로 바꾸지 못하지? 
왜 더 크게, 더 예쁘게, 더 아름답게, 더 멋지게 만들지 못하지?
이 몸이 너니? 이 몸이 진짜 너니? 진정한 넌 누구니?

이 청년은 이 앎들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내면의 빛이 던져준 많은 다른 앎들도 나누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현자들이 말하는 '육체와의 동일시'라는 환상에 갇혀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채 100년도 살지 못할 그 육체란 옷을 자신으로 믿고, 그 몸을 위해 일평생을 바치고 있었습니다. 그네들은 그 몸이라는 옷을 자기라 여겼습니다. 그네들은 그 몸의 생김새가 자기라 여기며 괴로워 했습니다. 

그네들을 도우려 했습니다. 그네들의 괴로움을 씻어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듣지 못했습니다.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들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네들은 끊임없이 이렇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 몸이 나야. 이 몸의 생김새가 나야. 나는 남자야. 나는 여자야. 이게 나야. 나의 생각이 나야. 나의 믿음이 나야. 나의 습관이 나야. 나의 가치관이 나야. 나의 직업이 나야. 나의 지위가 나야. 

그 어떠한 것도 그네들이 아니지만, 그네들은 끊임없이 저렇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고작 수십년의 수명을 지닌채 살다가 난데없이 흙으로 돌아가 버릴 그 육신을, 자기라 여기며 불행해 했습니다. 울부짖곤 했습니다. 이렇게 외치곤 했습니다. 

나는 불행해! 나는 괴로워! 나는 무서워! 죽을것만 같단말야!


그 청년은 비로소 완전한 확신에 도달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이 깊디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한, 불행을 피할 수 없다는 완전한 확신에 도달했습니다. 그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저 의문에 답을 찾는 자만이 삶의 불행과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 청년은 오늘도 저 깊디깊은 수렁에서 빛을 찾아 헤매이고 있습니다. 

그 청년은 여러분들께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 합니다. 

몸 때문에 괴로우십니까? 그 몸이 자기인지를 살펴보세요.
생김새 때문에 괴로우십니까? 그 생김새가 자기인지를 살펴보세요.
능력 때문에 괴로우십니까? 그 능력이 무엇인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인지를 살펴보세요.
살펴보세요. 그리고 살펴보세요. 또 살펴보세요. 

여러분들이 보는 TV, 여러분들이 보는 영화, 여러분들이 듣는 음악.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을 여러분들의 괴로움과 불행에서 벗어나게 해주진 못합니다. 
살펴보세요.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바로 그 자기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