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니 습작/환상 깨기

군대 가기 전, 필수 유념 사항

이리니 2009. 7. 9. 07:30
[출처 : 사진에 명기 ]

 대한민국 남자라면 반드시 한번쯤은 맞딱뜨려야 하는 지랄맞은 코스가 하나 있다. 바로 '군대'다. 참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음과 동시에 전설 또한 많은 동네다. 

 예전 이리니에게 후배가 물었던 적이 있다. 군대를 갔다 왔냐고... 갔다왔노라 답했다. 어땠냐고 물었다. 길게 답하지 않았다.
조까탰어...
 이 말, 현역으로 제대한 예비역은 전원 100% 이해한다. 저 말 단 한마디에 담겨있는 모든 의미를 그냥 이해한다. 그랬더니 후배가 겁을 잔뜩 집어먹곤 다시 물었다. 군대가서 잘 하려면 어케해야 하냐고... 역시 길게 답하지 않았다.
그냥 가지마...
  그만큼 힘들고, 괴롭고, 고롭고, 고달프고, 배고프고, 더럽고, 추줍고, 짜증나고, 열불나고, 춥고, 덥고 + 세상에 있는 모든 부정적 형용사와 부사를 덧붙인 곳이 바로 그 '군대'다. 만약 이리니가 죽었다가 다시 환생할 즈음에 신(神)이 다시 한국으로 환생할 것을 명한다면, 그 또는 그녀의 바로 앞 바닥에 발라당 드러누워 이렇게 외칠 생각이다.
배 째!
 왜냐고...? 첫째는 학교 때문이고, 둘째는 군대 때문이다.

 헌데 살다보면 군대와 관련한 참 재밌는 얘기, 포복절도할 전설, 군생활과 관련된 온갖 유쾌한 얘기들이 들려오곤 한다. 어디서...? 예비역들에게서. 그 시작은 거의 이런 식이다. 

  • 내가 베트남 스키 부대에 있을 때...
  •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태권도 정권 찌르기로 막는데...
  • 낙하산을 타고 권총으로 전투기랑 맞짱을 뜰 때 말이야...
  • 38선에서 오줌을 누다가 땅굴을 발견했는데...
  • 근무초소에서 발견한 처녀 귀신과 사랑에 빠졌는데 말이야...

 인터넷 상에 올라와 있는 군생활 경험담... 읽으면 너무나 재미가 있다.
 술자리에서 터져나오는 선배들의 군대 얘기... 들으면 참 흥미롭다.

 오늘 이 글은 그 방향이 사뭇 다를 것이다. 아직 '전역증'이라는 레어 아이템(rare item)을 득템하지 못한 불우한 대한 건아들에게 요즘의 대세인 '리얼(real)'을 전달하기 위해 작성 되었다. 

 부디 미리 주의 바란다. 갓 입대를 앞둔 이가 본다면, 심각한 우울증과 조울증, 달려오는 차들을 볼 때마다 달려 들고 싶은 강박 충동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이 사실만은 장담하겠다. 이 글을 잘 읽고 유념하면,

1. 2 대 맞을거 1 대로 끝낼 수 있다. 
2.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군 화장실에서의 줄담배를 현격히 줄일 수 있다. 
3. 목, 허리 건강에 해로운 원산폭격을 건강에 좋은 팔굽혀펴기 정도로 완화할 수 있다.
4. 군생활 중 끊임없이 찾아오는 자살 충동을 지혜롭게 회피할 수 있다.
5. 군생활 중 엄습하는 인간에의 실망, 삶에의 절망, 신에의 원망을 감소시킬 수 있다.
 
 한마디로 줄이면?
군대에서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오게는 만들어 줄 것이다. 

 자, 제군들, 준비됐는가? ^^


1. 요즘 군대 좋아졌다... 란 말, 믿지 말자. 

 요즘 군대 좋아졌다...란 말은 상대적인 말임을 명심하자. 즉, 예전 열악한 군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불우한 이들의 넋두리에 불과하다. 아직 군 미필자인 여러분들은 예전의 열악한 군생활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유념하자. 따라서 군대에 들어가는 그 순간, 여러분들의 뇌리로 이런 생각이 스치울 것이다. 

쓰읍... 21세기에 이런 동네가 정말로 있었던거야...? 
여기가 사람 사는 동네가 맞긴 맞아...? 여기서 2년이나 보내야 되는거야...? 

2. tv에 나오는 군부대는 특수 부대다. 
[ 출처 : KBS ]

 간혹 tv를 보노라면 엄청나게 깨끗한 환경에, 각 개인에게 지급되는 1인용 침상과 관물대, 모자와 팔뚝에 짝대기 하나, 즉 이등병이 실실 쪼개고 있는[각주:1] 부대가 등장하곤 한다. 이런 부대는 '매스컴 전담 태스크 포스'. 즉, 특수부대다.

 tv에 나오는 여자 연예인들을 보고, 세상에 사는 모든 여자가 다 저렇게 이쁘구나...라고 하면, 크레이지다. 
 tv 연속극에 등장하는 재벌들의 삶을 보고, 세상 사람이 다 저렇게 사는구나...라고 하면, 크레이지다. 
 영화에 나오는 연인들의 삶을 보고, 세상 모든 남녀가 저런 저릿저릿한 연애를 하는구나... 하면, 크레이지다.

대한민국의 모든 군부대가 저렇구나... 하면, 역시 크레이지(crazy)다. 

 간혹 부대에 감찰이 뜬다, 사단장이 뜬다, 대통령이 뜬다... 라는 '특명'이 하달될 때가 있다. 그럼...?
 군부대원들이 총동원, 허허벌판에 빌딩을 짓고, 질퍽한 흙길을 아스팔트로, 국방색 거무튀튀한 군용 짚차를 마이바흐로, 검정색을 흰색으로, 물을 불로 만들어 내는 기적을 창조해 낸다. 

 매스컴이 뜬다...라고 하면? 마찬가지다. 군대란 그런 곳이다. 
 이 참에 꼭 윗분들께 이런 간언을 드리고 싶다. 
각하! 제발... 제발... 그냥 쉬소서. 각하들의 관심은 아랫것들을 죽일 수도 있음을 통촉하소서... !!


3. 군대가면 건강해진다... 믿지 말자. 

군대가면 규칙적인 생활에 운동도 많이 하니, 건강해져서 돌아올 수 있을거다.
 이런 말 많이 들었을거다. 누구로부터...? 특히 아저씨, 아줌마들로부터... 

 믿지마라. 아저씨들은 군대 갔다온지 너무 오래됐거나 아니면 방위, 면제들도 있다. 아줌마들은 아예 군대를 가본 적이 없다. 그러니 그냥 믿지 말라. 

 군인이면 피할 수 없는 것이 '전투화'다. 신어보지 않았으면 말도 마라. 일단 신어보면 신는다는 것 자체가 신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미리 경고한다.
열라 무겁다.

 

 입영장을 받아 놓고, 미리 전투화를 경험해 보고 싶다 하시는 분들을 위해 준비했다. 


 집에서 매일 어머니가 챙겨주시는 사제밥을 먹고도 별 건강한 줄 몰랐던 이가, 군대에서 나오는 정체 불명의 음식들을 2년간 매일 먹고, 육체적, 정신적 컨디션의 고려없이 무작정 행해지는 기계적 생활, 과격한 운동, 강압적 훈련으로 건강해진다...? 구라다. 

 군대 가기 전, 건강과 관련해서는 그냥 이렇게 생각하자. 
몸만 상하지 말자. 

 왜 몸 뿐이냐고...? 마음의 건강은...? 마음의 건강을 지킬 생각은 포기하자. 무리를 넘어 불가능하다. 다만...
미치지만 마라. 


4. 군생활 2년은 완전 낭비다...?

 그런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완전 낭비'란 말에는 분명 어폐가 있다. 그럼 뭔가를 얻어오긴 하냐고...?
그렇다. 얻어오고 배워온다. 

 바로 이 부분이 어른들이 '군대 갔다 오더니 어른됐다', '철들었다'는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되겠다. 어느정도 연령대를 넘은 여자들 또한 이 부분을 민감하게 감지한다.

 말로써 표현하자면, 대략 아래 정도일 것이다. 
1. 잔인하고 처절할 정도의 현실 인식.
2. 온 몸과 온 마음으로 경험하는 자신의 한계.
3. 부모 품에서 자라났던 '나 잘났네...', '난 나 하고픈대로 해...'라는 내면적 어린 아이의 종말.
4. 대한민국 문화에 교묘히 스며들어 있는 군 문화, 즉 상하 위계 질서에의 탁월한 적응.

군제대 후, 사회 진출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가장 큰 재산이 되는 것이 바로 위의 4번 항목이다. 예전에는 취업전선에서 '군필자 우대'란 말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암암리에 여자보다는 남자를, 미필자보다는 군필자를 우대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도 바로 4번 때문이다. 한마디로,

군대 문화, 즉 상하 위계 질서가 엄격한 한국 사회,
월급쟁이 직장인들에게 무리한 업무를 끊임없이 강요하는 한국 사회에서
힘들어도 참고, 더러워도 참아내는 '적응 능력'에서 확실한 우위에 설 수 있다.
 

 군대에서 얻는거 더 없냐고...? 없다! 
음... 굳이 하나 더 있다면 '내가 군대 있을 때 말이야...'로 시작하는 구라 정도...? ^^


5. 군 제대 후, 건강히...라는 말, 믿지 말자.

 이 사실을 명심하자. 
군생활은 '후유증' 및 '합병증'을 유발한다. 

 이 불치 질환의 사례를 보자면, 

1. 움직이길 극단적으로 싫어한다. 

 [원인] -> 군생활 중, 자의와는 하등 상관없이 강압적으로 움직여야만 했던 상황에 대한 반작용.
 [사례] "여보~ 재털이..." "야, 리모콘..." 등등.

2. 집안일에 대한 극단적 거부반응.

 [원인] -> 군생활 중 자행됐던, 끊임없는 청소, 정리 정돈, 식기 닦기[각주:2], 자질구례한 사역[각주:3]들에 대한 반감.

3. 여자를 기겁케하는 결벽증.

 [원인] -> 상기 2번과는 정반대의 후유증. 군생활 중 익힌, 깔끔한 정리정돈과 청소에 완전히 물든 경우.

 좀 더 상세한 내용과 나머지 질환들에 대해서는 '군필자의 애환, 질환 그리고 고환[각주:4]'이라는 글에서 상세히 다루겠다. 여기를 다시 찾기 귀찮으신 분은 즐겨찾기(CTRL + D) 또는  블로그 구독+을 이용하자. 


마무리

 이 정도에서 마무리를 짓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갑자기 들었다. 안기부, 기무사, 보안대, 헌병대는 물론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실미도 부류의 특수 부대원들의 방문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겨 버렸다. 이 글을 발행한 후, 갑자기 이리니가 사라져 버리거든, 네티즌 여러분들의 구글링(Googling)만이 이리니를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 달라. 검색하고 또 검색해서 이리니에게 꼭 다시 자유를 찾아달라. ^^
 이 글을 발행한 뒤에도 잠잠하면...? 좀 더 리얼한 글로 2부 정도를 올려 보겠다. 

 각설하고 글의 마무리를 짓자. 입대를 앞두고 있는 - 현역이 아니면 '입대'라 하지 말고 '첫출근'이라 쓰자 - 불우한 건아들에게 마지막 정리의 글을 남기겠다.  
 
0. 신의 아들일 수 있다면 무조건 군대는 가지 마라. 하지만 가야 한다면, 피할 수 없다면, 그냥 가라. 
1. 최악, 극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군대를 가라. 
2. 군생활 2년. 그냥 '죽었다' 생각하라.
3. 군대는 반드시 여러분의 체력의 한계를 시험할 것이다. 되도록이면 '몸'을 만들고 가라.
4. 군대는 반드시 여러분의 정신적 한계를 시험할 것이다. 고뇌를 이기려하지 말고, 그냥 생각하지 마라. 왜? 생각한다고 해서, 고뇌한다고 해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이 군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5. 여자 문제는 확실히 매듭을 짓고 가라. 군인에게 만 화(禍)의 근원은 여자와 고참이다.
6. 몸 상하지 말고, 무사히 돌아오는 것을 목표로 하라. 

 이 글은 다소 과장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최악을 가정하고 가면, 왠만하면 견딜 것이다. 그렇지 않고 우습겠거니... 하고 갔다가는 그 충격이 견디기에 이만저만 아닐 수도 있다. 이리니는 그렇게 믿고 있다. 

 마지막으로 군대는 표준화된 육군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공, 해군은 물론 의경과 전경도 있다. 참고로 이리니는 '전경' 출신이다. 대한민국이 더욱 선진화 되고, 민주화 되는 그날, '리얼 전경 스토리', 그 살떨리게 폭력이 난무했고, 피가 마를 날이 없었던 그 날의 처절했던 기록을 생생히 전할 것을 약속하며 글을 마친다.

 입영 영장을 받아든 그대들이여...
부디 죽지 말고, 돌아 오라. 이 세상에는 여자가 아닌 여자이 있다! 건투를 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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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군 전문 용어 : 웃다, 미소짓다. [참고] 예전 군대에서는 이등병 때 잘못 실실 쪼갰다가 병장을 달고 나서도 고달픈 군생활을 해야만 했던 전우들이 비일비재했다. 전문 용어로 '군생활 꼬였다'라고 한다. 다시 말해, 단 한번의 웃음이 한 인간을 고난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 있는 곳이 군대였다. 요즘? 모르지... [본문으로]
  2. 이리니처럼 재수 없으면 수십, 수백명분의 식기를 닦아야 할 때도 있다. [본문으로]
  3. 군부대 특수 용어. 일본식 한자어로 추정되며, 순 우리말로는 '뺑뺑이'. [본문으로]
  4. 그 '고환' 아님. 고환[苦患] [명사] 같은 말: 고뇌(苦惱).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