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니 습작/명상록

사랑이 움직인다? 아니, 움직이지 않아.

이리니 2009. 5. 19. 19:30


 모 CF에서 어떤 잘 생긴 넘이 부메랑을 던지며 미친듯이 외친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고...

 광고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 많은 사람들, 그 중에서도 젊거나 어린 이들은 이 말을 철석같이 믿을 수 있다. 오늘 이 글은 이 부분의 오류를 수정, 젊고 늙고를 떠나 "사랑 때문에 고통스럽다"란 말이 없어지게 하는 것이 목표다. 


사랑의 본질

 아무도 사랑이 뭔지 모른다. 그 누구도 사랑에 '대해서'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을 한다. 우리 인간들에게 어쩌면 불가능한 것이 단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사랑은 뭘까?
아무도 모른다고 해놓고선 다시 질문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인간의 마음은 개념화 작업, 다시 말해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지 못하면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말하는 고약한 습성이 있다. 그래서 개념화, 도식화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야 그 시끄럽고, 오만방자하기 그지없는 '마음'이란 넘이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일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낼 순 없지만, 그에 대한 그림은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존재의 본질

 존재란 뭘까? 아무도 모른다. 그 누구도 존재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도 모른다. 그러니 현자들의 말을 빌리자.

존재는 곧 있음이다. 있음은 곧 존재이며, 그 존재, 있음 자체가 바로 사랑이다. 

 위에 인용한 현자들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사랑하지 않고 사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가 타당하게 설명된다. 우리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역으로 우리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있기 때문 즉, 우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수학을 좋아들 하시는가? 수학적 도식화는 아래와 같을 것이다.

존재 = 있음 = 사랑


존재 = 있음 = 사랑

수학을 싫어하시는 분들을 위해 언어화, 개념화 해보자.

존재하는 것, 있는 것은 사랑할 수 밖에 없다.
존재하는 것, 있는 것은 모두 사랑스럽다.
사랑은 있음, 존재에 대한 것, 즉 존재함, 있음을 사랑함이다.

우리는 어떻게 있고 존재하는가? 사랑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사랑하는가? 우리가 있고,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론? 우리가 곧 사랑이며, 우리의 존재 자체가 사랑이다. 

고로 우리는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를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사랑이다. 우리의 에너지는 사랑이며, 우리 존재의 근원이 또한 사랑이다. 우리가 사랑이며, 사랑이 우리다.

있음, 존재가 움직이는가?

몸은 움직인다. 마음은 움직인다. 세상은 움직인다. 하지만 있음, 존재는 움직이지 않는다. 왜?

만약 있음, 존재가 움직인다면, 우리는 있다 없다를 왔다갔다 할 것이며, 살았다 죽었다를 불규칙적으로 반복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났던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왜? 있음, 존재는 '있는 것'이지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있음은 있다. 존재는 있다. 우리는 있다. 
마음, 몸, 세상과 같은 존재의 속성들은 움직인다. 하지만 존재, 있음이라는 본질, 그 뿌리는 움직이지 않는다. 


사랑이 움직이는듯 보이는 이유

 높은 산을 올라간다. 저 아래 광활하게 펼쳐지는 세상과 주변의 경이로운 자연, 주변에 넘쳐나는 식물과 동물들을 본다. 마음이 아주 고요하고 맑을 경우, 우리는 모든 존재들의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경험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름답다', '멋지다', '감동적이다', '죽인다' 등의 표현을 쓰며, 그 있음, 존재의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에 놀라워 한다. 

산을 내려온다. 주변에 엄청나게 많은 변화들이 있다. 사람들, 물건들, 자동차들, 시끄러운 소음들, 직장생활, 사회생활, 자기 개인의 문제, 가족 문제, 학교 문제, 인간 관계와 관련된 온갖 문제들이 의식과 마음 속에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온다. 마음이 무겁다. 심란하다. 괴롭다. 이 때, 마음은 더 이상 산 정상에서 볼 수 있었던 그 아름다움, 장엄함, 사랑을 볼 수 없다. 왜? 마음이 오염되었다. 어두워졌다. 산란, 심란해졌다. 세상과 자기, 타인들을 비춰줄 마음이라는 거울에 문제가 생겼다. 마음이 우울하니 삶이 세상이 우울해 보인다. 마음이 어두우니 세상이 어둡고, 사람들이 어두워 보인다. 미래도 어둡다. 자신의 신세도 어둡다. 이런 식으로 끝이 없다. 

한 남자가 한 여인을 본다. 이 남자의 마음은 일시지간 밝다. 그래서 그 여인이란 존재의 아름다움과 사랑을 본다. 그 여인의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고, 사랑스러워 보인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다. 

시간이 지난다. 그 남자의 마음이 오염된다. 그 남자의 마음이라는 거울이 오염됨에 따라 자연스레 그 여인도 오염된듯 보인다. 더 이상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오염되어 보인다. 

그러다 다른 여인을 본다. 그 남자는 다시 이 여인에게서 아름다움과 사랑을 본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사랑을 보지 못할 것이고, 또 다른 여인에게로 가려 할 것이다. 역으로도 마찬가지. 여인들로 남자들을 향해 동일한 일을 반복하고 있다. 

마음은 모든 것을 비추이는 거울. 그 근본 역할은 반사다. 
 

 마음은 그대의 모습을 그대 마음대로 그대에게 비춘다. 마음은 세상의 모습을 그대 마음대로 그대에게 비춘다. 마음은 타인의 모습을그대 마음대로 그대에게 비춘다. 지금 이 순간, 그대는 그대의 마음을 보고 있다. 

사랑은 움직이지 않는다. 단, 그 사랑을 반사하는 그대의 마음만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대는 그대의 마음에 들어하는 이에게로 그 마음을 향하게 한다. 
그에 따라 자연스레 그대의 사랑은 그 사람에게로 반사되어 비추인다. 
이럴 때 그대는 '나는 저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틀렸다.
사실 그것은 그대 사랑의 본질이 아닌 마음에 의한 반사광일 뿐이다. 

사랑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대의 마음만이 움직인다.


진정한 사랑

마음이 있는 한, 진정한 사랑은 불가능하다. 왜? 그 거울은 항상 사랑을 이리저리 반사만 할테니까...

사심 없는 맑은 마음, 예로부터 무아, 무심이라 일컬어졌던 그 상태 아닌 상태에서만이 진정한 사랑이 광휘를 발한다. 그 때에는 반사가 없다. 오직 사랑이며, 만물이 사랑이고, 만물이 사랑스러우며, 만물은 그를 사랑한다. 이것이 존재의 근원, 그 절대, 그 합일, 그 신, 그 부처의 상태 아닌 상태이다.


사랑...

자신의 마음, 그 사심이 있거든, 그 누구도 비난하지 말라. 그 상대 또한 그 상대 나름의 마음을 가지고 있음이니.
자신의 마음, 타인의 마음 또한 비난하지 말라. 그 마음은 마음 나름의 역할이 있음이니.

진정한 사랑을 타인에게서 바라지 말라. 그것은 그대의 바로 안에 있다. 그것이 그대의 존재이며, 그것이 그대의 생명이며, 그대의 있음 그 자체이다.

타인이 자기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 하여 비난하지 말라. 그대가 진정한 사랑을 이루지 못한 그 만큼, 그 상대도 그러할테니.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볼 필요도, 생각할 필요도, 원할 필요도, 요구할 필요도 없다. 

오직, 오직 지금 이 순간, 바로 그대 안에 있는 그 사랑을 발견하라. 
사심없고, 이기없는 마음으로 오직 그 불변, 절대의 사랑을 발견하라. 
그것이 전부이며, 그것이 모든 것이다.
 
사랑 때문에 고통스러운가? 오직 너, 그리고 오직 너의 마음을 살펴보라. 거기에 답이 있다.

- 이리니의 명상록 "사랑에 대하여" 버전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