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니 습작/명상록

삶이 고달픈 근원적 3가지 이유

이리니 2009. 6. 20. 12:00

 살아오는 동안 강산이 세번을 변했다. 그리고 이제 또다시 반 넘게 변해왔다. 글쓴이는 일평생 '행복'을 찾아본 적이 없다. 다만 '불행'을 피하려 해왔을 뿐이다. 피할 수 있었냐고? 아니.

 이리 피하려, 저리 피하려 장장 30년 넘는 세월을 애써 왔음에도 그 놈의 '불행'이라는 녀석을 도무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연히 자각하게 된 날이 있었다. 입에서는 욕지기가 치밀고, 속에서는 불타는 분노가 일어 온 몸을 태울듯 했다. 좌절과 절망의 시커먼 어둠 속을 헤매며 '폐인' 소리마저 듣곤하던 어느 날, 불현듯 억울함이 치솟아 올랐다. 냅다 하늘이 보이는 바깥으로 뛰쳐 나갔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오른손을 힘껏 위로 치켜 들었다. 검지 손가락을 세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가 원해 사는 생도 아닌 것이, 이토록 고달파야만 한다면... 내 기필코 삶의 모든 비밀을 낱낱이 드러내어 당신이 심어놓은 모든 불행의 씨앗을 싸그리 태워버릴테야! 어디 두고 봐! 두고 보라구!
 그 날부터다. 삶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 삶은 비밀을 감추려 하였고, 이리니는 그것을 드러내려 하였다. 

 주변의 대다수 인간들은 삶이라는 수박의 겉을 핧아대느라 정신을 잃고 있었다. 돈으로 행복을 사려 하였고, 권력이라는 힘으로 자신을 지키려 하였다. 직업으로 자신을 대신 삼고, 학교에서 배운 알량한 지식을 지혜라 믿고 살았다. 자신의 부모가, 자신의 자식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으며, 남자는 여자가, 여자는 남자가 자신을 지켜 줄 것이라 위안하며 살았다. 이런고로 이리니는 언제나 혼자여야만 했다. 

 오늘 이 글은 이리니가 캐낸 자그만한 무언가를 나누고자 하는 글이다. 단지 그 뿐이다. 



 불행의 근원 제 1 - 한계 지어진 육체  



 음식이라는 그 무언가를 먹지 못하면 불행이 찾아온다. 배고픔이다. 
 예고도 없이 병이라는 불행이 찾아온다. 고통이다. 
 잠만 좀 못자도 불행이 찾아온다. 고단함이다. 
 쉬어야 할 때 조금만 쉬지 못해도 불행이 찾아온다. 피로함이다. 
 원하지 않았으되, 시간과 함께 불행이 찾아온다. 늙음이다. 
 죽도록 싫지만 불행이 찾아온다. 죽음이다. 

 이 육체적 죽음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진실이다. 

 그렇다면 인간들은? 배고픔, 고통, 고단함, 피로, 늙음이라는 삶의 겉껍질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삶을 산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살았음에도 불현듯 닥쳐오는 노화와 죽음을 직면하게 되는 날이 반드시 온다. 그 때 인간들은 이런다.
신이시여, 왜 저를 버리시나이까...!!!
 신은 말로써 답했던 적이 없다. 
그러니 부디 그 전에 준비하자. 노화와 죽음이 닥쳐오기 전에 미리미리 준비하자. 

현실적 최선책
: 건강관리를 논하기 전에, 먼저 몸을 혹사하는 짓을 그만두자. 먹을 때 먹고, 쉴 때 쉬며, 잠이 오면 자자. 나머지는 모두 육체가 가진 유기체적 운명이 알아서 할 것이다. 그대가 잠이 들어 의식을 잃고 있을 때, 그대의 몸을 보살피는 그 힘이 사실 모든 것을 알아서 한다. 인간이 할 일은, 그 힘을 방해하지 않는 것 뿐이다. 

궁극적 해결책
: 육체가 만약 우리의 '진정한 자신', '진정한 자기'라면, 이 세상 그 누구도 불행을 피할 수 없다.
반드시 이 육체는 우리의 '진정한 자기'여선 안 된다. 이 사실을 알아내면 최소 육체로 인한 불행에서는 완전히 벗어나 해탈, 구원될 것이다. 이 방법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불행의 근원 제 2 - 한계 지어진 마음  


 인간의 마음은 마음 자체를 모른다. 
 인간의 지성은 지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인간의 이해는 이해를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의 마음은 아침에 깨어나 활동하지만, 밤이 되면 대책없이 그냥 꺼진다. 왜인지 마음은 모른다. 
 마음은 마음 자신이 왜 지금 여기서 삶을 경험하며 살고 있는지 모른다. 
 마음은 마음 자신이 왜 지금 여기서 몸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모른다. 
 한마디로, 마음은 그냥 아무것도 모른다. 

 인간들은 이 사실 자체를 모른다.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 
이 상태, 이 무지한 마음의 상태로 삶을 진행하는 한 절대로 불행을 피할 수 없다. 


현실적 최선책
: 지식은 물리계인 이 세상 속에서 삶을 사는데 필요하다. 하지만 그 지식, 그 마음을 가지고선 절대로 불행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 최우선. 그 후, 지식이나 학식이 아닌 지혜를 간혹이라도 좀 찾아보자. 

궁극적 해결책
: 마음이 마음 자신의 한계를 완전히 자각하고 그 엄연한 진실을 완전히 납득하고 받아 들인다. 그 후, 이 모든 것이 있도록 한 궁극적 근원 - 이것을 뭐라 불러도 상관없다 - 에 모든 것을 맡겨 버리는 것이다. 헌신, 순복, 신앙, 구도... 뭐라 불러도 상관없다. 이 내맡김이 완전해지면 마음은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의 자리에 신 또는 부처 또는 진리라 불리워온 그 무언가가 대신 들어설 것이다.

즉, 마음의 소멸. 이것만이 마음이 마음으로 인해 생기는 불행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이 방법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불행의 근원 제 3 - 사랑하는 이들  

 

 위에 언급했던 불행의 근원 제 1, 제 2가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예고없이 닥칠 것이다. 
 여러분들이 볼 수 없다면, 상관없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이 '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이들이 불행해 하는 모습을 보며 불행해 할 것이다. 

현실적 최선책
: 살아 생전, 최선을 다해 사랑하자. 죽도록 사랑하자. 

궁극적 해결책
: 인간의 숙명인 이 모든 불행에서 자신이 먼저 벗어나자. 그 후에 사랑하는 이들에게 가르쳐주자. 그 길을...



 마무리 - 사실상 단 하나의 해결책  

 

 글의 끝을 맺자. 
 읽는 이들의 이해를 위해 글을 길게 늘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실상 모든 불행에서 벗어나는 궁극적 해결책은 딱 하나 밖에 없다. 

1. '나' 또는 '자기'가 완전하다.
2. '나' 또는 '자기'가 애초부터 없다, 존재하지 않는다.
3. 신 또는 부처 또는 진리. 이것 하나만 존재한다.


이 셋 중 하나를 완전히 알아내면, 모든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셋 중 하나를 알게 되면, 셋이 원래 하나란 사실도 알게될지 모른다. 

삶이란 스승은 원래 평화롭지만, 필요하다 싶으면 비정하리만큼 냉혹하고 잔인할 때가 있다. 
삶의 겉만 핥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이 스승은 불행이라는 회초리를 휘둘러 우리를 깨우려할지 모른다.
그 불행이라는 회초리는 우리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고, 우리의 육신을 사방으로 흩어버릴지도 모른다.
그 전에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리고 깨어나야 한다.  

졸음에서 깨신 분은 출석부에 도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