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팁

'좋은 부모 되기', 요즘 너무 어려워.

이리니 2009. 5. 25. 21:03


 예전에 비해 참으로 많은 것이 변해 버렸다. 눈이 빙빙 돌다못해, 머리조차 돌아버릴 지경. 세상의 돌고 도는 속도조차 따라가기 벅찬 판에, 아이들조차 무럭무럭 자라나, 부모들을 발 아래로 깔아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최첨단 21세기 좋은 부모의 자격. 어렵고도 어려워져 버렸다. 


 초6 여학생  

 

 한창 영어 수업 중이었다. 평소 공부하는 습관이 들어있지 않던 이 여학생은 오늘도 형편 없었다. 소수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해온 꾸준한 영어 학습으로 이미 중학교 저학년 수준의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요즘. 조금 있으면 중학교에 진학할 아이가 영어에 대한 기초 자체가 없으니, 가르치는 선생 입장에서 속이 터지는 것을 넘어, 그 아이의 미래가 걱정이 돼 심란할 지경이었다. 

 수업을 중단하고, 공부에 취미를 붙이지 못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설득을 하기 시작했다. 선생인 나 자신의 과거사, 학창시절, 외국 생활, 현대에서의 영어 실력의 중요성, 중고등학교로 진학했을 때의 여러가지 일들을 언급하며, 그 여학생은 물론 다른 녀석들의 마음 속에 공부에 대한 의지를 심고자 노력했다. 그리곤 가정에서의 꾸준한 학습을 강조하며, 필요하다면 부모님들의 도움을 받으라는 얘기로 이어졌다. 

그러니까 집에가서 말이야... 부모님과 함께...

함께..에서 '께'란 소리를 채 마무리하기도 전이었다. 또래 여학생에 비해 몸집도 크고, 목소리도 컸던 이 여학생이 버럭 소리치듯 말했다. 

우리 아빠, 엄마. 영어 쥐뿔도 몰라요. 함께 공부? 칫! 칫!


 선생인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으랴? 입만 몇번 벙긋벙긋하다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리고 그간 나름대로 영어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아온 것이 참 다행이라 느껴 버렸다. 최소한 미래의 내 아들들, 딸들에게 '영어 쥐뿔도 몰라요'라는 소리를 듣진 않을테니까...


 중1 남학생  

 

 아시는 분들은 다 안다. 오늘날 학생들의 공부를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들 중 하나는, 컴퓨터, 그 중에서도 컴퓨터 게임이다. 특히 온라인 게임의 중독성은 상상을 초월해 어른들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오죽했으면, 성인이 게임방에서 며칠씩 쉬지 않고 게임을 하다 돌연사를 하겠는가?

 오늘날 대다수의 부부들은 맞벌이. 한마디로 가정에서 아이들을 통제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없는거다. 특별한 통제 장치가 없는 경우, 상당수의 학생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상당수의 시간동안, 컴퓨터 게임, 채팅에 열중한 채 시간을 보낸다. 내가 목격한 일부 학생들의 경우, 늦은 새벽시간까지 이어지는 게임으로, 심각한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아이들도 상당히 많았다. 공부가 제대로 될리가 없다. 

 그 날도 컴퓨터 게임에 열중하는 시간을 줄이고, 차츰차츰 집에서의 학습시간을 늘려갈 것을 충고하고 있었다. 별로 효과가 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일정 수준이상의 학습 장애를 가지고 있는 녀석들이 하필이면 그 반에 유독 많았다.

너네들 스스로 게임 시간을 줄이지 못하겠다면, 좋다, 내가 너네들 부모님들께 일일이 전화를 해서...

갑자기 아이들 전체가 웃기 시작했다. 그것도 키득키득...

이 녀석들! 선생님이 얘기하는게 우스워? 뭐야? 이유가 뭔데, 웃는거야?

 들려온 아이들의 말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그렇게 하셔도 소용없어요. 부모님들 컴퓨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단 말이에요. 우리가 컴퓨터로 무슨 짓을 해도 우리 아빠, 엄마는 모른단 말이에요. 키득키득... 우리가 부모님들보다 훨씬 컴퓨터를 잘한단 말이에요.. 키득키득

 여기서 또 말이 끊기면 선생 체면이 말이 아니라며 말을 이어가려 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하나? 결국 헛기침 몇번으로 얼렁뚱땅 화제를 돌릴 수 밖에 없었다. 


 마무리  

 

 아이들에게 '실력 위주의 평가와 심판'을 가르친 것은 머리 다 큰 어른들, 부모들이다. 이 아이들은 훌륭한 가르침을 기반으로 성장, 급기야 선생들과 부모들을 평가하고 심판하기에 이르렀다. 

 솔직히 궁금하다. 그 누가 있어 이 아이들의 심판을 피해갈 것인가? 그 어떤 선생, 부모가 있어 이 아이들의 평가를 무사히 통과할 것인가?

 앞으로 세가지의 길이 있다. 

 아이들로부터의 '쥐뿔도 모른다'는 무시를 고스란히 감내하며 사는 방법이 첫째요, 사회생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코피 터지게 공부해서 아이들보다 훨씬 상위의 실력을 겸비하는 고난의 길이 둘째며, 실력 위주가 아닌 인성 위주의 교육을 통해 올바르게 아이들을 키워내는 방법이 셋째다.

 

글을 쓰는 이 사람은 자식이 없다. 여러분들은 있는가? 그럼 어쩔텐가? 어느 길로 가실 생각이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