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팁

아이와의 대화단절, 종이한장으로 극복하기

이리니 2009. 6. 4. 08:30

 
요즘처럼 맞벌이 부부가 많아진 시대. 당연히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나 적다. 그에 더해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들을 전전하다 저녁이 아니라 한밤중이 되서야 비로소 집을 찾는다. 한마디로 소중해야 할 집이, 따뜻하고 포근해야 할 가정이 예전에나 있었던 '잠자는 방'이 되어버린 것이다. 부모도 잠만 잠시 자고 직장으로, 아이들 역시 학교를 간다며 집을 나가버리니 무슨 수로 가족들간의 따뜻한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어쩌다 짬이 난 부모. 평소 못했던 아이들과의 대화라도 좀 해봐야겠다는 당찬 포부를 품고 아이들을 부른다. 그런데 아이들의 반응이 영 신통치가 않다. 입이 한줌이나 나온채로 이렇게 얘기한다.

한창 TV 잘 보고 있는데, 왜 불러요? 무슨 일 있어요?
아, 지금 게임중이란 말예요. 왜 불러요? 조금 있다 하면 안돼요?
 이거 직접 경험해 보면 그 충격이 상상 이상으로 크다. 부모가 자식을 불렀는데, 자식의 입에서는 '왜 불러요?'라는 말이 나오는거다.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부르는데도 이제는 이유가 필요한 시대가 되어버린거다. 이게 오늘날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오늘 글은 이 부모와 자식간의 단절된 대화의 다리를 다시 건설하는 것에 관한 글이다.

( * 이 글에서 언급하는 '아이들'은 이미 취학을 한 학생들을 지칭합니다. )


 부모들의 가장 큰 착각  

 

 선생이란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학부형들과 상담을 할 때, 가장 크게 놀라고 또한 가장 크게 깨닫게 된 기묘한 사실이 하나 있다. 

되려 부모가 타인들보다 자신의 자식들을 더 모른다. 

 이 사실을 처음 확인했을 때의 놀라움은 정말로 컸다. 마음 속에서 '이럴수가!'란 놀라움이 울컥 솟구칠 정도였다. 오늘은 이 부모들의 착각 중 단 하나만을 지적해 보자. 

아이들은 부모들의 생각보다 항상, 항상 더 어른에 가깝다.
  
 이 뜬금없는 말이 무슨 뜻일까? 길게 풀자면 이렇다. 여러분들의 자녀들은 여러분들이 '아이니까 모르겠지...'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며, '아이인데 설마 그런 생각을 하겠어...?'라고 하는 것을 이미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좀 더 가슴에 와닿게 하기 위해 사례를 한가지 들어보자. 예전 'PD 수첩'이라는 프로가 청소년들의 원조교제를 주제로 삼아 방송을 했던 적이 있다. 채팅방에서 이걸 희망하는 학생을 찾아내 모처로 불러냈다. 누가 나왔을까? 초등학교 3학년짜리 남학생이 원조교제를 한번 해보겠답시고 나온 것이다. 어떤 부모가, 어떤 선생이, 어떤 어른이 이런 일이 일어날거라고 상상이나 하겠는가?

 그 프로의 마지막 장면에 그 초등 3학년 남자 아이는 이런 놀라운 소리를 내뱉는다.
우리는 이렇지만, 우리의 부모들은 우리가 이렇지 않다고 생각하죠...
 이 얘기를 들었을 때의 충격. 말도 못한다...


 지나치게 똑똑한 아이들  

 


 여기서의 '똑똑'은 학교 성적과는 별개의 의미다. 매스미디어의 발달은 물론, 인터넷 환경의 엄청난 발전으로 아이들이 평소 접하는 정보의 양은 어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어쩌면 어른들, 부모들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 왜? 어른들보다 미디어를 접하고, 인터넷을 접할 수 있는 시간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에 덩달아 이런 아이들이 학교, 학원에서 뭘 하겠는가? 맞다. 서로서로 이런 정보를 주고 받는다. 이 일이 매일매일 일어난다. 이 과정이 일정 시간 이상 지속되면? 아이들은 엄청난 양의 정보를 습득해 가며 엄청나게 똑똑해져 버린다. 



 부모들의 어두운 눈  

 


 여기서 잠깐 위에서 언급했던 내용들을 다시 정리를 해보자.

1. 아이들은 부모들의 생각보다 항상, 항상 더 어른에 가깝다.
2. 아이들은 부모들의 생각보다 항상, 항상 더 똑똑하다.

 이 두가지 사실을 왜 글쓴이는 끄집어 냈을까? 그리고 소제목을 왜 '부모들의 어두운 눈'이라 지었을까?

 여러분들의 아이들은 여러분들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엄청나게 세부적인 사항, 심지어 부모인 여러분들이 감지하지 못하는 것들까지 대단한 감수성으로 감지해 낸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부모의 불화. 아마도 아이들이 가장 먼저 감지해 낼거다. 부모의 무관심. 말할 것도 없다. 부모의 편애. 모두 알아 차린다. 마치 동물들의 새끼가 생존을 위해 태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어미의 젖을 찾듯이, 아이들은 부모들에 대한 많은 것들을 거의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지도 모른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평소 품행이 단정치 못하거나, 학업에 의욕이 없는 아이, 친구들과의 다툼이 많은 아이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이 뭘까? 바로 이거다.

우리 부모님은 나한테 신경조차 쓰지 않아요. 무관심 그 자체예요. 쳇...
  이런 얘기를 하면서 웃는 아이조차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가? 그 자조의 웃음, 그 서글픈 웃음을 아시는가?

 이렇게 한번 가정해 보자. 여러분들은 아이들에게 무관심하지 않다. 하지만 아이들 교육을 위해, 생계를 위해 열심히 뛰지 않으면 안된다. 본의 아니게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을 충분히 낼 수 없다. 글을 쓰고 있는 이리니 역시 이러한 삶의 고달픔 속에 있는 사람. 우리나라의 많은 부모들이 이런 상황 속에 있음을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다. 그러던 중 짬이나서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하려 할때가 있다. 아이들을 불러 모은다. 이 때, 지나치게 똑똑한 요즘 아이들의 마음 속에는 다음과 같은 어린 생각이 들 수 있다. 







평상시에는 그렇게 무관심하더니 갑가지 왜 이래? 오늘 무슨 날인가? 에이, 귀찮아...
 대화를 하려해도 뚱한 반응, 외식을 시켜주려 해도 뚱한 반응. 혹시 여러분들의 아이들에게서 이런 '뚱한 반응'을 보신 적이 있는가? 부모가 자식들과 대화를 해보려하니 되려 아이들이 '무슨 일?'이라는 황당한 시선을 보냈던 적은 없는가?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아이들은 평상시 부모인 여러분들을 본능적으로 대단히 민감하게 감지하고 있다. 그런데 난데없이 평상시에 없던 행동과 말을 하니 이상하지 않겠는가? 황당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아이들은 이 사실도 알고 있다. 오늘은 이렇지만, 내일은 또다시 부모들의 무관심 속에 있게 될 것이라는 것도...

 이 사실도 알아두자.
 부모들의 바쁨은 아이들에게 '무관심'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아이들이 비록 어른들의 생각보다 똑똑하긴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아이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들은 어떻게 해야할까?

 
 종이 한장으로 대화의 다리를...  


 사람이 사람을 직접 대면한 상태에서 '말하라!'고 하면 되려 말문이 막혀 버린다는 사실,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 보셨을거다. 멍석을 깔아주니 되려 못하는거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머리 속에 차곡차곡 잘 정리되어 있던 생각들이 정작 말로써 옮기려고 하면, 조리있게, 생각했던 그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도 경험해 보셨을거다. 이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학자들이 지적하는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한계, 언어의 한계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무엇을 활용해 왔는가? 그렇다. 바로 문자. 즉, 편지다. 이 문자를 활용한 편지의 가장 큰 이점은 첫째로는 자신의 생각을 시간을 두고 조리있게 기술할 수 있다는 것이며, 둘째는 가슴 깊숙한 곳에 있는 속마음을 활자를 통해 상대방에게 어느정도까지는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편지와 그 편지의 이점을 활용, 여러분들은 아이들과의 사이에서 끊어져 버린 또는 서서히 끊어져가는 소통의 다리를 다시 건설할 수 있다. 간혹 TV나 영화 같은 것에서 이와 같은 장면들을 보신 적도 있을 것이다. 물론 실행은 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이 많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나라 부모들의 놀라운 점 하나가 뭔지 아시는가? 부모이면서도 자신의 아이들에게 칭찬하는 것, 속마음을 표현하는 것, 편지를 보내는 것 등을 부끄러워 한다는 것이다. 생전에 안하던 것을 갑작스레 할려니 이게 또 낯간지럽고, 어색한거다. 이런 경험들 없으신가? 많은 분들이 아마도 있으실거다. 


 구체적 실행  

 

 우선 시작을 이렇게 해보자. 

 뜬금없이 긴 장문의 편지를 쓸 필요는 전혀 없다. 되려 아이들을 또다시 당황케할지 모른다. 처음은 그냥 가벼운 메모, 쪽지를 활용해 보자.  

 어머님 되시는 분들은 도시락을 활용해도 좋다. 따스한 마음이 담겨있는 쪽지가 있는 도시락. 이거 받아본 사람만 그 감동을 안다. 그 자그만 쪽지가 사람의 가슴을 얼마나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지, 얼마나 큰 감동을 줄 수 있는지 경험해 본 사람만 안다. 

 짧게 쓰되, 최대한 마음을 담아 쓰자. 아쉬운 것보다는 칭찬을, 어두운 내용보다는 밝은 내용을 쓰자. 그리고 꼭 말미에 답장의 쪽지를 부탁하자. 간단히 말해, 부모와 자식간에 대화의 창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아버님 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다. 그냥 짧은 쪽지를 쓰고, 아이들 책상에 올려두기만 하셔도 된다. 조금 더 지혜를 쓰신다면, 용돈에 슬쩍 끼워 넣으셔도 되겠다.

 처음에는 쑥스럽고, 민망할지도 모른다. 밝은 가정과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딱 한번만 눈을 질끈 감는다고 생각하시면 되겠다. 언제 이 쑥스러움, 민망함, 부끄러움이 사라질까?

 맞다. 아이들에게서 답장의 쪽지가 왔을 때다. 가슴이 따뜻해 질거다. 뭔지 모를 감동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이후로는 일사천리다. 서로 짧은 쪽지를 주고 받다가, 필요하다 싶으면 서서히 그 내용을 늘려 나가시면 된다. 사실상 아이들도, 부모들도 자주 이런 장문의 편지를 쓸 수는 없다. 틈이 날 때, 휴일일 때,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하셔도 충분하다. 그 때쯤이면 아이들도 더 이상, 부모로부터 온 장문의 편지를 이상타 여기지 않을 것이다. 

 드디어! 드디어! 부모와 자식간에 잃어 버렸던 그 소통의 다리를 자그마한 종이 한장으로 다시 찾은 것이다. 수시로 이렇게 쪽지를 주고 받다보면, 얼마 있지 않아 얼굴을 직접 맞대고 하는 대화도 점점 자연스럽고 부드러워져 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주의사항을 말씀 드리고, 글을 마치자. 
마음이 이미 많이 닫혀있는 아이들은 삐딱한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답장 부탁해~'라는 부모의 쪽지에도 불구하고 답장을 보내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때, 부모인 여러분은 상상외의 섭섭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명심하자. 그 아이의 마음을 닫아 버린 것에는 부모인 여러분들의 책임도 일부분 있다는 것을. 그러니 인내를 가지고,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해보자. 아이가 답장이 없더라도, 꾸준히 쪽지를 전해보자. 아마 틀림없이 답장이 오는 날이 올 것이다. 그 감동의 답장이 오는 날이 올 것이다. 무슨 날인가? 바로 그렇다. 닫혀진 아이의 문이 서서히겠지만 열리기 시작한 날인 것이다. 아이와의 사이에 다리 기둥 하나를 비로소 놓은 날인 것이다.


 
 이상으로 자식을 사랑하지만 이런저런 현실적 어려움으로 아이들과의 소통을 힘들어 하시는 학부형들을 위해 몇자 적었다. 여러분들의 가정에 화목과 사랑이 가득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