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니 습작/남과 여

남녀 사이에도 빠지지 않는 돈, 돈, 돈

이리니 2009. 6. 2. 08:30


 직장인들의 74% 정도가 사회적 박탈감을 느끼며, 그 중 67%가 경제적 소득격차 때문에 이 박탈감을 느낀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한마디로, 놈, 놈, 놈이 아니라 돈, 돈, 돈인거다. 

 이 기사를 읽던 중, 그간 삶의 와중에 들어왔던 남녀들의 '돈'에 대한 푸념의 소리들이 뇌리를 스쳐갔다. 그 푸념의 소리를 간략히 하자면 이렇다.

이노무 돈 때문에 부담스러워서, 남친(여친)을 사귈 수가 없다. 

 좌측 관자놀이[각주:1]와 우측 관자놀이를 꿰뚫는 필(feel)이 오시는가? 맞다. 바로 그거다. 요즘 같은 불황, 취업난의 불행한 시대를 살고 있는 이리니와 같은(?) 젊은 청춘들은 제목만 봐도 벌써 필이 꽂혔을거다.

 돈이 과연 무엇이관데 젊은 청춘들의 불타는 사랑을 가로막는단 말인가? 이 불행한 사태를 강 건너 불 구경, 수수방관만 해야한단 말인가?  이리니는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나서 보기로 했다. 총대를 매고서...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사랑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


 남자들의 고뇌  

 


 대한민국 남자들은 학창시절에 생기의 대부분을, 군대가서 뺑이치며 젊음의 대부분을, 성인이 되어서는 토끼같은 자식, 여우같은 마누라 잘 살게 해보겠다며 직장가서 술로 담배로 생명력을 소진하다 결국 여자들보다 10년 일찍 생을 마감한다고 알려져 있다. 예전에는 땅에라도 묻었는데, 요즘에는 화장 문화의 발달로 불에 태워 버린다. 가히 '장렬히 산화한다' 하겠다. 

 



 나이 서른 넘어 겨우 직장을 잡는데 성공한 대한민국 대표 머스마 A군. 나이는 서른이 넘었으나 취업준비다 뭐다하며 곰팡내 나는 독서실에 쳐박혀 일자리 구하기에 매진해 온 A군이 여친이 있을리가 없다. 예전 같으면 젊음이다 청춘이다를 외쳐대며 객기라도 부릴 법한데, 냉혹한 현실 앞에 몇번이고 되풀이되는 좌절과 절망의 전선을 넘어온 A군에게는 이제 이 알량한 객기마저도 사라진지 오래다. 여자 얼굴? 몸매? 학력? 집안? 어떤 배부른 자슥이 그딴 소리를 한단 말인가? 그냥 눈 딱 감고 여친이 되어주는 것만도 감지덕지할 판이다. 결혼까지 해준다면? 그래서 나의 품에 귀한 자식이라도 안겨준다면? 평생을 업고 살며, 손에 물은 커녕 때도 끼지 않게 하겠다 다짐하고 있는 중이다. 

 있는 인맥, 없는 인맥을 총동원하고, 뒷주머니에 담배값을 은근슬쩍 끼워주는 처세술까지 발휘하고 나서야 겨우 잡아낸 소개팅 자리. 나이는 서른이 넘었지만, 이제 갓 입사한 신입이 무슨 돈이 있겠는가? 이리 빌리고, 저리 빌리고, 부모님께 융자까지해서 받아낸 귀하디 귀한 돈을 얇디 얇은 지갑에 꽂아넣고 나왔다. 첫만남의 자리. 분식집에서 하랴? 생전 와본적도 없는 레스토랑인지 레지스탕스인지에 와서 뻘쭈미 앉아 있자니, 어디선가 불어온 상큼한 꽃향기[각주:2]와 함께 왠 참한 처자가 다가온다.

 스케이튼지 아스케킨지 스테이큰지를 코로 반, 입으로 반을 먹었다. 메뉴판에 적힌 가격을 보곤 식겁했지만, 다행히 티를 내진 않는데 성공했다. 어쩌랴? 이 꽃다운 처자가 먹겠다는데. 포크와 나이프를 생전 처음 쥐어보곤 당황했지만, 군대는 괜히 갔다 왔겠는가? 이등병의 민첩함과 일등병의 눈치로 그 무식의 고지, 촌티의 능선을 무사히 넘는데 성공, 대충 쓸어 먹는데까지도 성공했다. '후식은?' 이라는 웨이터의 말에 다시 한번 위기가 찾아왔지만, 처자가 먼저 '쏼라쏼라 커피에 샷 추가[각주:3]요'를 한 순간, '나도요'를 외침으로써 마지막 고비를 넘겼다. '미 투'로 할걸 그랬나?

 드디어 끝났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레스토랑을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 어라? 근데 그 처자가 갑자기 없어졌다. 화장실에 갔나 싶어 두리번 세리번 거리니 이미 레스토랑 바깥에 나가있는 처자가 보인다.

암. 첫만남이니 당연히 계산은 남자가 해야지.
 부모님께 눈치로 융자까지 받은 귀하디 귀한 돈으로 무사히 계산을 끝냈다. 손바닥만한 고기 조금 쓸어 먹었는데, 만원짜리가 도대체 몇장이나 나가는거냐? 커피가 얼마? 만원이 넘어? '내 월급으로 저 커피를 몇잔까지 마실 수 있는거야?'를 열심히 계산하던 A군, 뒤따라 오는 것은 또다른 좌절일 뿐임을 직감하곤 계산을 멈췄다. 이런걸 내공이라 하나?

 비록 불행한 시대를 맞아 빌빌거리긴 했지만, 나름의 듬직함과 남성미를 풍기는 A군이 '자식을 보겠다'는 불타는 집념으로 열과 성을 다하니. 처자 또한 싫지는 않았던지 의외로 빠르게 교제를 약속하고...

 꿈만 같던 시간을 보내던 A군. 교제 3달이 넘어가자 서서히 암울한 기운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밥 값, 커피값, 영화비 및 각종 교통비와 부대 비용을 고스란히 혼자 감당해야만 했던 A군. 부모님과 친구들로부터의 융자금은 바닥난지 오래, 야금야금 자신의 쥐꼬리 같은 월급조차 깎아 먹고 있었으니...

 오늘도 언제나와 같다. 처자는 너무나 당연한듯 바깥에 나가 있고, A군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지갑을 박박 긁어가며 힘겹게 계산을 끝마쳤다.

이대로 계속 가야만 하나? 내가 계속 버텨낼 수 있을까?
 
 순간 이런 시상이 A군의 가슴 속에 떠오른다.

죽는 날까지 처자를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빈지갑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로또를 긁어대는 마음으로
모든 날아가는 돈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월급으로
살아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바람이 빈지갑에 스치운다.[각주:4]



 여자들의 고뇌  

 

 
 사연을 하나 보기 전에 이리니의 블로그에 남겨진 여성분들의 댓글을 이번에도 스리슬쩍 한번 빌려보자. 물론 모두 익명이시다.[각주:5]

 arepos
아무래도..연하는 거둬주고 밥도 사주고 용돈도 찔러주고 해야 하는거겠죠.
연상남들이 연하녀 여친 기르듯(ㅡ ㅡ;) 이..??
역시, 그넘의 돈이 관건인 것인가.

 연하남도
연상녀가 능력이 조금 되야..
연하남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대쉬할 수 있어요.
밥도 많이 사줘야 하고

 글을 보신 분들이라면 이 글이 '연상녀가 연하남을 낚을 때(?)'의 경우란 사실을 눈치 채셨을거다. 참으로 묘하게도 여성분들조차 자기가 연상일 경우, 교제에 필요한 돈에 대한 부담을 느낌과 동시에 연하남을 리드하며 이끌고가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사실상 남자랑 하등 다름이 없는거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여러해 취업 준비에 매달린 B양. 끝간데 없이 높았던 콧대와 자존심을 낮춘 후에야 비로소 자그마한 중소기업에 취업할 수 있었다. 취업 이후로는 완전히 독립, 부모로부터의 경제적 지원은 완전히 끊기고, 월세를 비롯한 모든 비용을 자신이 직접 번 월급으로 해결해온지 1년이 지났다. 

 직장생활, 사회생활. 취업 전의 부푼 꿈은 꺼진지가 오래. 도서관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던 시절에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육체적으로 고되다. 그에 더해 매일매일 어김없이 찾아오는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예전 같으면 휴일을 맞아 친구들과 어울려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하겠건만, 이젠 휴일만 오면 '자자! 더 자자! 좀 더 자자!'란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돈, 돈, 그 놈의 돈만 좀 있다면...

 집에서는 '시집' 얘기로 연일 성화다. B양도 내일 모레면 서른을 넘어가니 만만한 나이는 아닌 것이다. 독신주의를 고수하는 고고녀가 아닌 관계로, B양 또한 시집을 가고 싶은 마음이 새록새록 솟아나고 있는 것 또한 사실.

 친구의 친구의 오빠의 사촌동생의 친구의 군대 동기로부터 소개팅 제의가 들어왔다. 자신처럼 불행한 시기를 맞았음에도 무사히 직장을 잡고 결혼할 대상을 물색 중인 남성미 짙은 A군이란다. 번듯한 대기업도 아니고, 신의 직장이라는 공기업도 아니며, '사'자 돌림의 전문 직종도 가지지 못한 남자이지만, 과년한 나이의 B양은 '남성미'라는 섹시한 소리에 '나가자!'란 결심을 하게 된다. 

 첫 만남의 장소. 레지스탕스 레스토랑. 예전 몇번 친구들이랑 먹어 본 스테끼[각주:6]를 어렵게 시켜 맛있게 먹었다. 자신의 월급으론 어림도 없다는 '쏼라쏼라 커피'에 샷 추가까지 해서 마셨다. 왜? B양이 돈을 낼 필요는 없으니까. 당근 남자 부담 아니겠어?

 그 후로 계속 이어진 만남. 교제까지 약속했다. 하지만 끝끝내 B양은 자신의 지갑을 열려하지 않았다. 뼈 빠지게, 힘들게 번 그 돈이 어떤 돈인데... 최대한 아껴야 했다. 왠만하면 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상대인 A군은 넙죽넙죽 계산을 잘도 하지 않는가? 예상 외로 능력이 있는 것일까? 어쩌면 집안이 생각보다 빵빵할지도 모르지...

 B양의 계산은 철저했다. 일단 최대한 자신의 돈은 아낄 수 있는대로 아낀다. 물론 상대 A군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다. 하지만 아직 결혼 약속이 된 것도 아닌 상태에서의 금전적 출혈은 절대 사양할 생각. 아래와 같은 멋진 변명마저 지니고 있는 B양인 것이다.

 지금은 이렇지만 나중에 결혼까지 가는 사이가 된다면, 지금 내가 아끼는 이 돈이 우리 모두의 돈이 되니까 그닥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지 않아...? 호.호.호.
 
 듬직남 A군의 남성미에 서서히 빠져들며, 은근슬쩍 프로포즈까지 기대하게 된 B양. A군의 사랑이 듬뿍 담긴 눈길을 볼 때마다 그 기대는 점점 커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사랑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
 
B양의 전화벨이 울렸다. 술에 잔뜩 취한 A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리, 이제 그만 헤어지는게 좋겠어...

 새벽을 뜬눈으로 지새운 B양. 하염없이 흐르던 눈물도 이미 말라 버린걸까? 퉁퉁 부어오른 눈에는 핏발만이 잔뜩 서있다. 회사에 출근해야 할 시간에 뜬금없이 동네 뒷산을 오르는 B양. 

 굵직한 소나무에 A군의 사진을 걸고, 집에서 가져온 과도, 식칼, 송곳, 젓가락을 던져대기 시작하는데... 

 푯! 푯! ...





죽어 이 자식아! 이 나쁜 자식! 뒈져! 뒈져 버리란 말이야![각주:7]
 
 
 사랑이냐? 돈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상으로 남녀 사이에 돈이란 넘이 과감하고 격렬한 태클을 걸어오는 경우를 봤다. 나름 과장되게 묘사한 부분이 있지만, 이것이 슬픈 현실의 한 단면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실 수 있는 분들은 많지 않을거다. 

저는 부정하고 싶어욧!
 얘, 학교 안가니? 초등학교 벌써 방학이야?

 여러분들이 만약 집도 절도 없고, 빽도 가방도 없는, 한마디로 오늘날의 많은 젊은이들 축에 낀다면 어찌시겠는가? 사랑을 포기하실텐가? 결혼 포기? 자식도 포기?

 머스마들의 듬직한 어깨, 그 탄탄한 가슴 근육을 나 몰라라 하실텐가? 
 처자들의 뽀송뽀송한 험!험!을, 탱글탱글한 삐!삐!를 포기 하실텐가? 


 남녀의 대동단결을 위한 제안  

 

 
 이렇게 해보는 것은 어떨까?

남녀가 본격적인 교제를 시작할 무렵[각주:8], 아예 까놓고 '돈'에 대한 솔직한 얘기를 나누는거다. 
보통 부부의 연을 맺고 난 후에 하기 시작하는 '경제 작업'을 미리 앞당기는 것이다. 

 위의 작업이 수월히 진행 되었을 경우, 아래와 같은 이득이 있을 수 있다. '가정'이라는 부분에 주의하자.[각주:9]

1. 남녀가 훨씬 친밀한 유대를 느낄 수 있다. 왜? 서로의 부족한 부분, 감추고 싶은 부분을 아니까...

2. 남자 또는 여자, 어느쪽이든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상대에게 솔직해 질 수 있다. 즉, '나 오늘 지갑이 좀 가벼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3. 더치 페이, 나눠 내기, 품빠이 같은 조잡한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왜? 아마도 남녀가 알맞게 나눠내게 될 가능성이 많을테니까... 서로가 서로의 주머니 사정을 아니까...

4. 보통의 남녀사이에서, 일반적으로 남자가 가지게 되는 '아깝다'라는 졸렬한 생각을 품을 가능성이 적을 수 있다. '나 너무 쫀쫀한거 아냐?'라면서 괴로워 할 필요가 없어지는거다[각주:10]

5. 남녀 둘 다가 어려울 경우, 보통 '없는 사람이 없는 사람을 더 위할 줄 안다'라는 만고의 진리가 작용할 수 있다. 그래서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 이해하고 도와야겠다는 이심전심의 묘용이 작용할지도 모른다. 

6. 이 상태에서, 더 깊은 관계로, 그 다음 결혼으로 이어져도 해피 엔딩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왜? 이 커플은 이미 결혼 전에 산전, 수전, 공중전, 경제전을 모두 치뤘기 때문이다. 

7. 가장 중요하다. 최소한 둘이 있을 때만큼은 '돈'에 대해 이런저런 잡신경 쓸 일이 없으니, 온전히 '사랑'에만 '올인'할 수 있을지 모른다.  


 
 마무리  

 

 너무 비현실적이라 느껴지시나요? ^^

하지만 글을 쓴 이리니는 '사랑'을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전부 동원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돈'이라고 하는 것이 참으로 기이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현실에서 행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만약 이 넘이 '사랑'을 가로 막는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부시고 나아가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랑'을 가로막는 '돈'이라는 장애물을 부실 수 있는 더 멋진 아이디어가 있으시면 댓글로라도 나눠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행복과 건강, 사랑이 충만하시길... ^^




  1. 귀와 눈 사이에 있는 태양혈(太陽穴)이 있는 곳. [본문으로]
  2. 처음엔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화장품, 향수 뭐 그런... 이리니는 한때 여자들 몸에서는 원래 그런 향기가 난다고 굳게 믿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믿으려고 노력한다. --; [본문으로]
  3. 강호동도 모른다. 이리니도 모른다. 혹 아시는가? 지식 검색에 '샷추가가 뭐죠?'라는 질문이 꽤 된다. 어떻게 아냐고? 해봤으니까. [본문으로]
  4. 이리니 작. '서러운 시' [본문으로]
  5. 어떻게 아셨는지 블로그 쥔장 이리니의 꽃같은 미모를 아시곤 간혹이라도 찾아주시니 가히 '신의 후각'이라 하겠다. 틀림없이 좋은 곳으로, 꽃미남에게 시집을 가실 것임을 장담한다. ^^ [본문으로]
  6. 스테이크. 이리니는 TV에서 본 적이 있다. [본문으로]
  7. 이 소리는... 함경북도 종간나시 까불면 뒤지리... 뒷산에서 들려오는 한맺힌 처녀 귀신의... [본문으로]
  8. 그러니까 '취미가 뭐예요?'라는 별 영양가 없는 질문은 더 이상 필요없는 단계를 말한다. [본문으로]
  9. 왜 가정이냐고? 해 본 적이 없으니까... [본문으로]
  10. 여자들은 이 괴로움을 잘 모를 수 있다. 근데 남자들은 이런걸로 고민하기도 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