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니는 막내 아들로 이 괴상한 세상에 첫발을 디뎠다. 괴상한 세상? 전직 대통령이었던 양반조차 스스로 목숨을 끊는 곳이 여기니, 괴상타해도 신(神)조차 뭐라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듣자하니 아주 힘들게 잉태 되었다 들었다.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과분한 사랑과 은혜 속에 성장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 과분한 사랑과 은혜 속에 삶을 영위하고 있다. 1
모두가 그런줄 알았다. 부모에 대한 야속함, 자식과 부모와의 갈등과 앙금. 드라마나 영화 속에만 나오는줄 알았다. 괴상한 세상 속에서 괴상한 삶을 영위하다보니,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 볼 수 있었다.
이 글은 그 많고 많았던 사람들 중, 부모로 인해 어려서부터 입어온 상처를 간직한 한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한다. 그리고 글의 말미를 읽을 때쯤, 여러분들 안에 있는 부모에 대한 서운함, 야속함이 용서로 녹아 내리길 희망해 본다.
한 남자의 눈물 |
수십년을 살면서 이렇게 대화가 편한 사람은 드물었다. 소위 말하는 죽이 잘 맞는 사람, 싸이클(주파수)가 잘 맞는 사람이었다. 나이도 2살 연상인 형. 누가 경상도 태생 아니랄까봐 평소 잡설, 시답잖은 수다를 싫어했지만, 이 양반만 만나면 이상하게 대화가 재미가 있었다. 이리니가 가진 형이상학에 대한 괴상한 괴변도 넙죽넙죽 잘 받아주곤 했고, 나름 이해하려 애쓰는 모습도 정이 갔다.
간만에 만나 단 둘이 오붓하게 술잔을 마주한 날이다. 평소 의식이 흐릿해지는 것을 극히 경계해 술을 입에 대지 않지만, 이 양반만 만나면 술을 사양하지 않았다. 제법 거나하게 취했을까... 흐르고 흐르던 대화의 소재가 '부모'와 '가정'으로까지 흘러갔다. 자기 집안 얘기를 천천히 읊조리기 시작하는 형.
내가 어렸을 때부터 말이지... 우리 부모님은 형만 아셨어... 나는 완전 뒷전이었지... 모든 것이 형을 위한 것이었어... 언제나 그랬지... 지금까지도 부모님들은 오로지 형, 형... 흐흑...
이리니가 뭔가를 잘못 들었다 여겼다. 나이 서른을 바라보는 남자의 입에서 흐흑! 이라니... 그것도 다른 주제도 아닌 집안 얘기, 부모 얘기를 하면서... 부모에 대한 얘기는 더 이상 없었다. 더 이상 언급하긴 뭐했을테지.
뭘 할수 있었겠나? 마치 아무 얘기도 못 들은척 술을 한잔 따랐다. 이 때, 보았다. 그의 눈에 맺혀 있는 한 남자의 눈물을. 어려서부터 쌓여온 설움의 눈물을.
이때부터다. 이리니의 탐구가 시작된 시점이. 열손가락을 깨물면 다 아픈데, 유독 깨물고 싶지 않은 손가락이 있다. 더 예뻐 보이는 손가락이 있다.
그 손가락이 바로 '맏이'라는 손가락이다. 특히 장.남.
부모들이 맏이를 편애하는 이유 |
아줌마들에게 물었다. 할머니들에게도 물었다. 그 기나긴 인고의 세월, 탐구와 탐색의 시간을 보낸 후 밝혀낸 부모들의 맏이 편애의 이유는 이렇다.
결혼을 하고, 손을 잡고 잤더니 어느날 갑자기 임신이 되었다. 첫 아기다. 남편되는 이는 아빠가 되었다는 기쁨에 아내의 배에 뽀뽀를 해대고, 아내되는 이는 이제 곧 엄마가 된다는 황홀한 기쁨에 젖어 구름 위를 떠다니는 행복을 느끼게 된다. 날이면 날마다 사람 배에 주둥이를 대고, '들려? 내가 네 애비다.', '아가, 들려? 내가 조선의 국모다'를 조기 교육하길 9개월. 드디어 한 생명이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까꿍! 하면서.
사랑의 결실인 첫 아이를 낳았다는 기쁨도 잠시, 이들의 앞에는 사뭇 냉엄한 현실이 기다린다. 이들은 첫아이를 낳았다. 다른 말로, 이 부부는 육아 무경험자, 무자격증 소지자 인거다. 나름 책도 보고, 이 강좌, 저 강좌도 찾아 들었지만, 단 하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빠져 있었음을 단시간에 깨닫는다. 뭘까? 바로 '경험'이다.
누가 애기를 천사라 했던가? 하루 온종일 자다가 눈만 뜨면 우는게 일이다. 말이라도 하면 좀 낫겠는데, 9개월의 스파르타식 조기 교육도 말짱 도루묵, 집이야 떠나가라, 세상에 망해버려라, 자지러질듯이 울어댈 뿐이다. 시가에 전화를, 친정에 전화를 하는 것도 하루 이틀. 부부가 밤잠을 설쳐가며 교대로 돌보지만, 그 경험 부족을 메꾸기에는 태부족이다.
바로 이 부분이다. 부모의 가슴 속에 스멀스멀 스며드는 어둡고, 사악한 기운이 태동하는 시점이. 여러가지 실수를 반복할 것이다. 그러면서 육아를 배울 것이다. 문제는 실수를 통해 배운다는 것이다. 이미 아이에게 실수를 했다. 더 이상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실수를 한건 한거다. 그것도 다름 아닌 자기네들의 첫 아이에게.
뭐가 생겼을까? 그렇다. 바로 '죄책감'이다.
그네들의 가슴, 특히 어미되는 자들의 가슴 깊숙한 곳에는 다음과 같은 어두운 생각들이 자리 잡을 수 있다.
- 부모로서 너무 부족했다.
- 해선 안 될 실수를 했다.
- 더 잘 해줄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 모든 것을 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그래서 너무 미안하다. 너무 너무 미안하다.
이쯤되면 눈치를 모두 까신 분들이 계실 것이다.
이 첫아이 때의 실수를 통해 배운 부모는 둘째부터는 훨씬 수월하게 육아를 해내게 된다. 셋째? 응애하는 울음소리만 듣고도 아이가 뭘 원하는지, 뭐가 불편한지를 순식간에 파악해내는 수퍼 마미, 수퍼 파파가 된다.
문제는 첫아이 때의 죄책감은 여전히 부모의 가슴 안에 응어리져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 경험이 있는 아줌마, 할머니들은 이렇게 말씀 하신다.
첫째를 볼 때마다, 항상 안타깝고 안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더 잘 해줄 수 있었는데, 못했다는 죄책감. 더 줘야 했는데, 주지 못했다는 아쉬움. 그래서 첫째를 볼 때마다 항상 '더! 더!'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맏이를, 첫째를 더 챙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혹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자신의 부모님이 자신의 형, 누나, 언니만을 편애했다는 설움, 그 설움을 넘어서는 상처를 가지신 분이 계신가?
부모이기 이전에 인간이신 분들. 그렇기에 완전할 수 없었던 분들. 그렇기에 실수를 피할 수 없었고,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식에 대한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살 수 밖에 없었던 분들. 그렇기에 '더! 좀 더!'를 끊임없이 되내이며, 맏이에 대한 죄책감을 씻으려 애써왔던 분들. 그 분들이 바로 여러분들의 부모님일지 모른다.
부디 이 글이 님의 가슴에 있는 그 응어리, 그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 그 사랑과 은혜 속에 있으면서도 이렇게 삶이 힘든걸보면, 참 신(神)이 야속하게 느껴진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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